외짝나막신|정연희<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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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사동엘 갔다가 나막신 한 짝을 사들고 왔다. 아무리 고물이 좋다해도 발에 꿰던 것이요, 그나마도 외짝으로 굴러다니던 것이니 그 형상이 볼만했다.
집에서는 고물귀신이 붙은 것으로 알아 질 겁들을 했으나 아무 말 않고 연마지로 때를 슬슬 벗기기 시작했다. 한번 문지르고 두 번 쓰다듬을 때마다 나무 결이 한금한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단정하게 골을 켠 나막신의 옛 모습이 화 안 하게 드러나면서 쟁을 치듯 놀랍도록 섬세하게 줄을 두른 솜씨가 눈을 버언 하게 만들었다. 나무 무늬를 절묘하게 말린 나막신 코와 버선 뒤꿈치를 터 억 받쳤음직한 듬직함. 참 멋도 있어라. 우리 선인들은 이리도 슬기롭고 멋이 있었구나.
나는 골동품 수집가도 아니오, 제대로 배운 완 상가도 못된다. 해후란 사람 끼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물건하나 만나는 인연 따라 세월과 정과 슬기를 배우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옛것을 만날 때면 그냥 흐뭇하고 든든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에 좋을 뿐이다. 하지만 그저 마음뿐이어서 어쩌다 골동품가게가 있는 곳에서나 목을 길게 늘려 기웃거리는 것이 가난하게 숨겨진 취미일 뿐 선뜻 돈을 들여 그럴듯한 것을 장만할 기회란 아직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우연히 D시에 들렀다가 놀란 일이 있다. 서울보다는 좀 어수룩한 그곳 골동품거리에, 서울서 원정 온 서양친구들이 차를 들이대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을 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얼마만큼 믿을만한 말이 될는지는 몰라도 민화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움직임을 보이는 요즘, 민화 중에 그럴듯한 것을 일본에서 구하는 편이 오히려 쉽다는 이야기다.
늘 해 오는 이야기지만 지역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우리 나라의 문화는 중국의 유장함이 적당히 소화되고, 기교가 승화되어 조잡함을 멀리 버린 순화된 문화임을 자부할만하다고 믿고 있다. 질박한 멋과 티없는 기품과 호방한 여유, 그리고 슬기로움이 칠칠한 문화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였던 20세기의 전반세기를 일본의 그늘에서 기절한 채 송두리째 놓친 셈이다.
이제 무엇이 우리를 지켜줄 힘이 되는가. 선인들이 면면히 이어주던 옛것이 슬기와 멋에서 우리의 것을 찾아 지키는 길이다. 크게는 민족정신을 되찾는 길이요. 가 까 이로는 우리의 멋을 다시 깨달아 아는 길이다.
먼 옛것에서부터, 캐어서 찾고 닦아서 지니고 펼쳐 자랑할만한 것을 우리는 지녔고, 이제는 자부심을 가지고 내세울만한 때도 되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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