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마다 다른 규칙 … 아이들 토론·동의 거쳐 넣거나 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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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공립 미셸 앙주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점심식사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시간과 짝을 정해 식사를 할 수 있다. [파리=김혜미 기자]

지난달 18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공립 미셸 앙주 초등학교. 미술 수업 중인 1학년 교실에 들어서자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법과 규칙’이 눈에 들어왔다. 만들기를 먼저 끝낸 니콜라(7)가 “메트레스, 메트레스(maitresse·선생님)”를 외쳐댔다. 작은 교실을 울릴 만한 큰 목소리였다. 하지만 교사는 대답 대신 벽에 붙어 있는 문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규칙 제2조: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든다’고 쓰여 있다. 니콜라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제가 만든 장식품을 집으로 가져가도 될까요?”

맨 아래엔 반 학생들 30명 서명

 이 학교 교사 벨로 블랑슈는 “선생님과 학생이 새 학년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반의 규칙을 정하는 일”이라며 “모든 규칙은 아이들의 토론과 동의를 거쳐 넣거나 뺀다”고 말했다. 니콜라, 엠마, 알렉상드르…. 4가지 법과 7가지 규칙이 쓰인 종이 맨 아래엔 반 학생들 30명의 서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학교뿐만이 아니다. 에브 를루 갈랑 파리교육청 장학사는 “파리에 있는 모든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급에는 이처럼 각자의 규칙이 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30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프랑스 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은 두 시간. 이 학교엔 점심을 먹는 순서와 자리, 함께 먹는 사람도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다. 식사 전후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알아서 결정한다. 대신 점심시간엔 파리시에서 나온 생활지도사 4명이 함께한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행동 속에서 잘못된 부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다. 식당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한 아이가 비치돼 있던 수저통을 세게 흔들자 생활지도사가 다가왔다. “시끄러운 수저 소리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즐거운 점심시간을 망쳐선 안 되겠지?”

 프랑스 인성교육의 핵심은 ‘자율과 공존’이다. 이 학교의 도미니크 토조 교장은 “아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학교의 역할”이라면서도 “다만 함께 만든 규칙을 통해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말했다.

자율·공존 의식 몸에 배게 도와

15년 전 프랑스로 이주해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정현주(42·여)씨는 “유치원에서 조금이라도 친구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엄하게 가르친다”며 “프랑스 사람의 몸에 메르시(감사합니다)와 파동(실례합니다)의 예절이 익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교육의 바탕에는 ‘라이시테(la<00EF>cit<00E9>) 교육헌장’이 있다. 정교분리 원칙인 라이시테는 자유·평등·박애에 이어 프랑스혁명의 4대 정신으로 불린다. 각자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고 공공장소에서는 종교적 행위나 성향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이 정신을 반영한 교육헌장은 총 15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헌장 서두에는 ‘라이시테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자유라는 가치와 평등 및 박애의 조화를 추구하며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이념’이라고 명시돼 있다.

윤리과목 45년 만에 부활시켜

 프랑스는 올해 1968년에 폐지된 윤리 과목(Morale la<00EF>que)을 45년 만에 부활시켰다. 뱅상 페용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그 이유에 대해 “돈과 경쟁, 이기심보다 지혜, 헌신, 더불어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파리(프랑스)=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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