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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야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늘은 남국의 외딴섬에서 소년「스포츠」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바로 이웃한 고교운동장에서 야구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평소에 아빠는 야구라면 그렇게도 열을 올리고 좋아하시기에 오늘 일찍부터 구경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경기는 K국민학교 대 H국민학교의 경기였다. 울퉁불퉁하고 거칠은 운동장에서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고사리 같은 손에 「글러브」를 끼고 꾸밈없이 경기에 열중하며 작은 팔을 높이 들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새삼 순박한 어린 새싹들의 열의에 가슴 뭉클한 감명을 받아 나는 더욱 정신을 쏟아 경기관람에 열중했다.
한참 경기가 치열해 「스코어」는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던 차에 심판의 이중판결이 내려졌다. 두 학교의 관계 선생님들은 서로 옥신각신 하다가 드디어는 욕이 튀어나오고 언쟁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경기는 겨우 끝이 났고 승리는 K국민학교에 돌아갔다.
H국민학교「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 고사리 같은 손에 자기 「팀」의 전적을 기록하겠다고 공책을 똘똘 말아 쥔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K국민학교「팀」편인 듯한 한 어른의 술 주정 비슷한 추태스러운 응원, H국민학교 감독선생님의 심판과 임원에 대한 불신감에 찬 표정, 본부기록원의 휴지쪽지와 같은 기록용지, 간단한 기록판 하나 마련하지 못한 본부임원들, 부정확하고 번복되는 오심…이 모든 것이 저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투지를 가지고 경기에 착하게 임한 어린 새싹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과연 무슨 교훈을 주었으며 혹시 그 맑고 그 또랑또랑한 눈에 불신의 실망이라도 주지 않았나 생각하며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사뭇 부끄럽기만 했다. <차지열(제주도 제주시 삼도1동 720의4 오신석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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