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교수 임용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늘날 한국에서처럼 대학교수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여대생들의 직업관을 조사한 「앙케트」에서 조차 대학교수직에 대한 존경도의 순위가 상위권을 벗어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상징적인 것으로는 매년 대학과 대학원과정을 마치고 나오는 우수한 인재가운데 장차 대학에 남아 대학교수가 되겠다고 지망하는 사람이 이제는 별로 많지 않게 됐다는 서글픈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그 원인을 진단하자면 물론 여러 가지 손꼽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대학교수로서의 직책과 최소한도의 위신마저 지킬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의 대학교원들에 대한 박봉. 다음으로는 대학사회 자체 내부에도 만연하고 있는 부실한 대학경영의 실태. 그리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참된 진리와 자유로운 사상·학설 등의 발전을 거의 생리적으로 두려워하는 사회풍토 등이 먼저 그 객관적 요인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대학교수 자신들이 빚어낸 주관적 요인 등이 또한 적지 않다.
첫째, 대학교수로서는 처음부터 역량부족이었던 자의 교수등용이 불가피했던 해방 후 우리 대학사회의 사정이 빚어낸 필연적 정체현상. 다음으론 교수들 자신의 학문적 정열상실과 이로 인한 학구적 노력의 포기. 그리고 일취월장하는 학문추세에 뒤따르지 못하는 빈약한 도서·실험시설 등 연구환경의 불비 때문에 빚어진 대학교수로서의 실력저하와 이로 인한 자신결핍 현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5일 민 문교가 밝힌 대학교수의 계약 임용제·기한부 임용제·직급별 정년제실시를 포함한 전반적 대학교수 임용제도의 개선방안은 전기한 대학교수 권위실추의 주관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처방으로서 주목할만한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제도는 이미 외국에서는 물론, 국내 몇몇 대학에서도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제도이기는 하나, 만일 이것을 사립대학을 포함한 우리 나라 전체 대학에서 채용하게 될 때, 그 미치는바 영향은 실로 지대한 바가 있겠기 때문이다.
본래 대학교수의 직책이란 오직 소수의 지적 「엘리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적 직업임은 동서고금을 통해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누구하고도 능히 학문적 「콤피턴스」를 다룰 수 있을 만한 일가견과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어야 할뿐 아니라, 학문과 진리에 대한 아낌없는 헌신과 쉴 새 없는 연구활동을 통해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감화, 만족시킬 수 있는 도덕적 「인테그리티」(성실성)의 소지자일 것임을 절대적인 조건으로 한다.
따라서, 어떻게든 일단 채용되기만 하면 일정기간이 지난 후 거의 자동적으로 조교수·부교수·교수 등으로 승진, 65세의 정년이 되기까지, 무조건 「대학교수」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한 우리 나라 현행 교육공무원법이 그 제정 당시부터 하늘아래 둘도 없는 모순된 제도였다는 것은 이제 너무도 명백한 것이 되었다.
여기 대학교원의 임용에 있어 각 직위별로 일정수준이상의 학문적 소양과 그 계속적인 연구업적 제시를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기한부·계약 임용제, 직급별 정년제 등의 구상이 도입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나무랄데 없는 것이라 하겠다.
다만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처럼 실추된 대학교수들의 권위를 되찾아주고, 그들의 학문적 대성을 북돋워 주기 위해서는 이 같은 인사제도의 채택 못지 않게, 그들의 자유롭고 꾸준한 연구활동을 저해하고 있는 그 밖의 여러 객관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전기한 인사제도의 운영면에 있어서도 그것이 혹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도 없지 않다는 것을 유념하여 그러한 일이 전무하도록 보장하는 안전장치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