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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과 국회의 자율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법원 제l부는 18일 오모 피고인의 국민 투표법 위반 상고 심 공판에서 『헌법 제1백2조1항에 법률이나 명령의 위헌 심사를 규정하고 있으나, 법안의 통과·공포·시행에 대한 유·무효 판결은 국회의 자율권에 저촉되므로 이 경우, 법원의 위헌 판결 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여 국회의 입법 절차의 적법성 여부에 관한 판결은 정치 문제로서 법원에서 판단할 수 없다는 주목할 만한 판 예를 남겼다.
우리 대법원이 창법에 규정되고 있는 위헌 심사 권에 대하여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3사태 때에도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가 합법이냐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때에도 『병력으로써가 아니면 질서를 이행할 수 있었느냐에 여부는, 대통령의 자유 재량에 속하는 사항』이라 하여 계엄 선포 행위가 장학 상의 통치 행위로 인정하였던 것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대법원이 입법부의 자율권을 존중하여 법률안의 국회 통과 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심사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위헌 심사권을 자기 제한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대법원도 국회나 대통령에 대하여 우월한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경우에는 정책적으로 행정부나 입법부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어 그에 대한 판결을 회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관례가 학설에서도 순수히 의회 내부적인 자율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의 국회 내부적인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백한 정설이 없다. 미국의 일부 판례나 일본의 일부 학설, 그리고 우리 학계의 일부 학자들은 국회의 의결 절차나 정족수 투표의 계산들은 국회의 자율권 행위로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반대설은 우리 헌법에서 국회 내부 행위인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와 징계 행위만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외의 국회의 내부 행위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전적으로 제외되는 통치 행위를 인정해야할 것 인지의 여부를 논하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일 것이나, 이번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매우 착잡하다고 하겠다. 헌법 제1백2조1항의 법률의 위헌 심사는 법률의 내용의 위헌성 심사뿐만 아니라, 성립 심사의 위헌심사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충분히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회가 점차 정당의 당리당략의 흥정 상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입법도 국민의 의사보다는 다수당의 의사를 반영하는 결과가 되고 있기에 오늘날 정계의 추세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 기관인 법원에 국민의 이익과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헌법을 보진 하도록 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법원의 위헌 심사 권 행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매우 큰 것이다.
대법원 책1부의 이번 판결은 그 자체로서의 안정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은 이와 같이 중대할 판결을 왜 전원 합의부에서 심판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5명의 도구성 판사의 전원 일치로 합헌 판결을 할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재판부 구성원이 종래의 위헌 심사에 있어 가장 보수적인 경향을 보여 준 판사들이라는 일부 비평도 없지 않은 터이고 보면, 이 판결이 대법원 전체의 의견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 까도 생각한다.
70년7월 말 국회가 대법원의 위헌 심사 권을 제한한 법원 조직 법안 제59조1항 단서를 추가하여 발단한 위헌 심사권 논쟁은 71년6월 대법원이 이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대법원 기능이 발휘되는 것 같았으나 곧 사법 파동을 야기시켰고, 이번 판결로써 사법부가 스스로 입법부의 우위를 인정해 준 것 같은 야릇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로서 요망할 것이 있다면 장차 이와 같은 사례의 다른 안건이 대법원에 계류하는 경우에는 전원 합의부의 판결을 구함으로써 스스로의 위치를 굳히고 사법 운영의 안정성을 기해 달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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