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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5배 늘었는데 … 25년째 면세 한도 400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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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공항 입국장에서 낭패를 겪는 해외 여행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면세 한도인 400달러를 넘긴 물품을 신고하지 않고 들고 들어오다 관세는 물론 30%의 가산세까지 무는 여행자가 3년 새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위반자가 양산되는 건 면세 한도 자체가 너무 낮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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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관세청 국감에서는 이 문제가 논란이 됐다. 관세청이 민주당 이낙연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면세 범위 초과 물품을 신고하지 않았다가 가산세를 문 경우는 4만6450건, 부과액은 14억8300만원에 달했다. 가산세 부과액은 지난해 전체 실적(11억9700만)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2010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부과건수는 3년 새 3배, 부과액은 5배 이상으로 늘었다.

 400달러의 면세 한도가 설정된 건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다. 면세 기준은 30만원(당시 환율로 400달러 안팎)이었다. 이후 96년 달러 기준인 400달러로 바뀐 뒤 지금껏 변화가 없었다. 25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4548달러에서 2만2708달러로 5배가량 늘었다. 연간 해외 여행자 수도 5000만 명 선을 넘어섰다. 이 의원은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면세 기준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면세 한도는 주요국들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800달러, 중국은 5000위안(약 820달러), 호주는 900호주달러(약 865달러)다. 일본은 80년대 후반에 기존 10만 엔에서 20만 엔(약 2050달러)으로 높였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던 시절, 국민의 해외 소비를 장려하면서다. 홍콩은 아예 한도가 없다.

 관세청도 2011년 면세 한도를 좀 높이려 했다. 기준 자체가 낮다 보니 여행자들 상당수가 위반하게 되고, 이를 단속하기 위한 행정력 낭비도 만만찮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10년 당시 전체 여행자의 2.5%인 48만 명을 검사했는데, 73%가 면세 범위를 초과한 물품을 갖고 있었다.

당시 관세청이 의뢰한 연구용역에서도 국내 면세 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국제적인 수준을 감안해 2010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을 감안한 적정선은 610~620달러로 평가됐다. 미국처럼 술·담배 등을 합산해 한도를 1000달러 선으로 높이는 대안도 제시됐다. 미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관세 환경이 크게 변한 것도 정책 변화가 필요한 이유로 지적됐다. 당시 보고서는 “그간 관세정책은 국내 산업 보호 측면을 감안해 수립돼 왔으나 FTA 확대는 보다 저렴한 물품을 공급해 국민 후생 증대를 꾀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며 “면세 한도도 소비자 후생 측면을 감안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상 계획은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과세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다. 관세청 관계자는 “공청회 등에서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는 계층이 전체 국민의 15% 선으로 이들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금융위기 여파에 세계 경제 불안이 이어지고 있던 것도 정책 변화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6개 규제개혁 과제를 정부에 건의하면서 면세 한도 상향 조정도 포함시켰다. 96년 이후만 봐도 소비자물가가 60% 이상 올랐는데 면세 한도는 그대로인 건 불합리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결정권을 쥔 기획재정부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실론과 과세형평론이 팽팽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경제 상황이 좀 나아져야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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