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정수빈 "7회 다이빙 캐치, 승부 걸었다"…MVP 선정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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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 LG와 두산의 경기가 1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7회초 1사 1루 정수빈(왼쪽) 이병규의 타구를 몸을 날려잡아고낸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며 동료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 임현동 기자]

 
플레이오프 3차전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두산 정수빈(23)이었다.
정수빈이 1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 3회말 김현수의 교체 선수로 그라운드에 나서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특히 수비에서 팀을 몇 번이고 위기 상황에서 구해내며 3차전의 영웅이 됐다. 정수빈은 이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경기마다 활약이 뛰어난 선수 한 명을 선정하는 ‘데일리 MVP(상금 100만원)’에 선정됐다. 정수빈의 맹활약에 힘입어 5-3으로 승리한 두산은 시리즈 전적 2승1패로 한국시리즈 행에 1승만을 남겨뒀다.

‘정수빈이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경기였다. 3회말 김현수의 대주자로 그라운드에 나선 정수빈의 방망이는 첫 타석부터 힘차게 돌아갔다. 팀이 3-1로 앞선 4회말 2사 1루 정수빈은 임정우의 2구째를 타격해 우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3루타를 만들었다. 정수빈의 안타에 1루 주자 임재철이 홈으로 들어오면서 점수는 4-1로 벌어졌다. 경기 흐름을 가져오는 천금 같은 점수였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에서 정수빈은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정수빈은 팀이 5-3로 앞선 7회초 1사 1루 이병규(등번호 9)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캐치 했다. 1루 주자가 스타트를 일찍 끊어 빠져나갔으면 실점을 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정수빈의 그림 같은 수비가 나왔다. 공이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두산 야수진은 정수빈이 공을 잡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기쁨을 표했고, LG 벤치에서 아쉬움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명장면은 또 있었다. 8회초 선두타자 오지환의 잘 맞은 타구가 나왔다. 안타라고 확신한 LG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지만, 이 타구는 정수빈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정수빈의 정확한 타구판단이 빛났다. 맞는 순간 안타라고 생각해 타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투수 홍상삼은 정수빈이 이 공을 잡아내자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김정준 SBS ESPN 해설위원은 “오늘 두산이 김현수의 대주자로 정수빈을 넣지 않았으면 경기 내용을 달라졌을 수도 있다. 정수빈의 글러브가 LG의 득점 찬스를 모두 막아냈다”고 칭찬했다.

2009년 프로 데뷔 이후 꾸준한 모습을 선보이며 지난 2년간 두산의 주전 외야수로 성장한 그는 올 시즌 그라운드에 나서는 시간보다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다. 팀 내 치열해진 외야 경쟁 때문이다. 마음고생도 있었다. 팬들 사이에서 정수빈이 한 지방 구단으로 트레이드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과적으로 트레이드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많이 위축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럴수록 정수빈의 노력은 더해졌다. 평소 연습량을 늘리는 것은 물론 하나라도 더 치기 위해 시즌 중에 황병일 두산 수석코치와 함께 타격폼을 수정하기도 했다.

가을 야구가 시작되자 그의 능력을 뽐낼 기회가 왔다. 정수빈은 지난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ㆍ2차전에서 6타수 5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방망이로 찬스를 만들어 놓고도 도루 실패와 주루사를 당하며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그는 “출루와 번트 같은 작전수행과 주루플레이가 내 본래 역할이다. 거기에 충실하겠다”면서 위축되지 않았다.

평소 김진욱 두산 감독은 정수빈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웃는다. 김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정수빈은 어린 선수인 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고 했다. 김 감독의 말처럼 오늘 그라운드에서 정수빈의 영리한 플레이는 빛을 발했다.
다음은 정수빈의 일문일답이다.

-MVP가 됐다. 기분은.
“마지막 9회에 LG쪽에 찬스가 갔는데, 그걸 우리가 가까스로 아웃시켰다. 수비가 강해야 이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7회 이병규 타구에 지체없이 달려갔는데.
“승부를 걸었다. 놓치면 지는 거고, 잡으면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빙 캐치 노하우가 무엇인가.
“노하우라기보다 감(느낌)이다. 슬라이딩 캐치할 때는 90%이상, 100%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잡는다.”

-번트 안타를 잘 만든다.
“3루수가 앞으로 있다는 것도 생각했다. (타구의)코스가 좋았다. 내가 나가면 어느 팀이든 번트는 생각한다. 알면서도 대는 거다. 내가 죽으면 1루 주자가 2루에 갈 수 있다.”

-준PO때와 지금 자신의 모습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마음가짐은 똑같다. 단기전이기 때문에 지면 끝이고, 이기면 올라가서 우승도 할 수 있는 거다. 상황에 맞춰서 자신있게 과감하게 하려고 한다. 주루사도 있었는데 죽어도 뛰어야 하는 선수다. 과감함에서 이런 플레이가 나왔다고 본다.”

-준PO 주루사가 많았는데.
“PO에서 소극적으로 하고 안 뛰면 팀이 안 돌아갈 것 같았다. 죽어도 욕먹고 뛰는 거고, 살면 칭찬받는다고 생각한다.”

-피로도는 어떤가.
“체력이 떨어진 건 사실인데, 순간순간의 집중력은 체력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단기전은 어차피 집중력 싸움이다.”

잠실=김유정 기자ㆍ김주희 기자kyj765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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