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학생회 '민원실'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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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대 김경안(21.경영학부2)씨는 최근 마음에 드는 하숙집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총학생회가 펴낸 '하숙집 가이드'라는 책자를 통해서다. 경상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불편과 민원을 전담하는 '생활 복덕방'을 최근 개설했다.

이 복덕방은 학교 주변 업소의 아르바이트 학생 임금을 정확하게 조사해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급여가 '야박한' 업소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하거나 불매운동도 벌인다.

대학 총학생회가 변하고 있다. 정치적 이슈나 학내 문제 등을 놓고 투쟁 일변도로 치닫던 모습에서 학생들의 복지를 위한 '민원센터'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민원센터'로 탈바꿈한 총학생회=한남대 총학생회는 하숙비 보증금 폐지 운동과 하숙비의 후불제 전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하숙집에 대해서는 입주하지 말자는 운동도 함께 진행한다.

이 대학 이홍연(28)총학생회장은 "3천원짜리 전화카드를 구입할 경우 1백원 정도의 이자를 감안, 할인해 주는데 수십만원의 하숙비를 선불로 받으며 할인을 안 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순천향대 총학생회도 지난해부터 대학 주변 하숙집.자취방 80여곳에 대한 정보를 담은 자료집을 신입생과 재학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자료집에는 하숙비와 자취방 보증금은 물론 인터넷 통신망.샤워시설 설치 여부, 보일러 상태, 세탁기 구비 여부 등의 정보가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전북대와 전주대 총학생회는 3월초 신학기를 맞아 시내 서점들의 협조를 받아 벼룩시장을 열 계획이다. 학생들이 필요한 교재를 시중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주대는 전공서적 등 각종 교재를 공동으로 구입,할인해 살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기로 했다. 전주대 강영훈(24.영상학부3)씨는 "총학생회가 주관하는 벼룩시장은 필요없는 물건을 처분하고 책 등을 싼값에 살 수 있어 학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교내 식당을 감시하는 총학생회도 적지 않다. 연세대는 '먹거리 지킴이', 경상대는 '학내식당 감시단'을 각각 구성해 음식의 질과 서비스, 위생상태 등을 매일 점검한다.

고려대는 야간에 학생 보호를 위해 교내를 순찰하는 '호랑이 포졸단'을 두고 있으며, 숭실대는 지저분한 홍보물을 제거하는 '복지 깔끔이 사업'을 벌인다.

서울시내 30개 대학 총학생회 산하 복지위원회가 연합해 만든 '한가위 귀향단'은 추석 때마다 비행기표 공동 구입이나 전세버스 공동 대절을 통해 학생들이 일반 요금보다 25~70% 싼 가격에 고향을 방문하도록 돕고 있다. 전북대.원광대.전주대 총학생회는 대학 주변 학원들과 연계해 학원비를 20~30% 할인해 주고 있다.

경상대 학원자주화추진위 정준(26.사회학과4)위원장은 "학생들이 편하게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총학 활동의 기본"이라며 "복지 확충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학내 투쟁은 호응 못받아=1990년대 후반 비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총학생회의 관심이 학생 복지에 모아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활동은 2000년 이후 시작됐다. 90년대 말 등록금 인상이나 총장 선출 문제 등 학내 이슈가 불거져나와 총학생회 측의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요즘 전국 대부분 대학 총학생회 활동의 3분의 2 이상이 학생들의 복지사업일 정도다.

원광대 김용규 학생처장은 "학생회가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바람직하다"며 "대다수 학생이 정치적인 문제보다 취업이나 학비마련 등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김용훈(28.섬유공학4)총학생회장은 "그동안 학생들의 복지보다 정치.사회문제에 매달리다 보니 학내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는 등 문제점이 나타나게 됐다"며 "투쟁 일변도 방식의 활동으로는 이제 학생들의 호응을 받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서형식.김방현.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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