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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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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승희
워싱턴 총국장

17년 만의 연방정부 셧다운(폐쇄)을 몇 시간 앞둔 9월 30일 미국 언론들은 의회 소식을 전하느라 떠들썩했다. 같은 날 일본도 떠들썩했다. 이유는 달랐다. 이날 상원 외교위원회는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 내정자를 만장일치로 인준했다. 최초의 여성 대사인 데다 케네디 대통령의 큰딸이란 점에서 일본 언론들은 첫 지명 때부터 요란했었다.

 워싱턴에서 보는 일본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임을 실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미 의회와 싱크탱크에는 ‘친일파’들이 너무나 많다. 미국 친구들과 대화하다 일본을 비판하면 “왜 한국은 일본을 그렇게 미워하느냐”는, 한국에선 질문거리도 되지 않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만큼 미국에서 보는 일본은 다르다.

 미국의 한 인터넷 여론조사기관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가 더 좋으냐고 물었다. 65.6%가 일본을, 34.4%가 한국을 택했다. 눈여겨볼 건 좋아하는 이유다. 한국이 좋다고 답한 사람들은 음식을 꼽은 반면, 일본이 좋다는 사람들은 사람을 꼽았다.

 요즘 미국과 일본의 밀월이 심상치 않다. 지난주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도쿄에서 열린 미·일 2+2(외교·국방장관)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 참석했다.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에서 열린 2+2 회담에 동시 참석한 건 처음이다. 두 사람이 들고 간 선물 보따리도 푸짐했다. 집단적 자위권 인정, 17년 만의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약속, 드론의 일본 배치 등. 케리 장관과 헤이글 장관 사이에 선 아베 신조 총리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미국은 21세기 외교의 최대 도전으로 중국의 부상을 꼽고 있다. 그런 미국으로선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일본을 끌어안는 게 큰 국익이다. 더구나 연방정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9500억 달러의 국방예산을 줄여야 한다. 아베 총리의 일본은 자청해서 그 부담의 일부를 떠맡겠다고 나섰다.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일본을 싫어할 이유가 도대체 없다. 또 다른 동맹인 한국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반대하지만 미국으로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밀월관계를 지켜보는 마음은 개운치 않다. 벌써부터 미국에선 한국이 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를 보지만 미국은 ‘일본의 미래 역할’에 관심을 갖는다. 미국은 한·미·일 3각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 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거꾸로 중국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모습만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다. 한국 외교가 선택지를 많이 갖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어느 순간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질문이 제시될 때다.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는 좌우 진영 간 논쟁은 국제사회에서 전개되는 약육강식에 비하면 애들 싸움이다.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우는 ‘큰’ 정치인들이 한국 외교가 직면한 진짜 큰 도전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박승희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