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시락 반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날씨가 점점 추워가고 있다. 오늘도 싸늘하게 식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하실 아빠를 생각하면 안스럽기만 하다 매일 밤 가계부와 씨름을 해봐도 적자를 면할 수 없는 날이 계속되자 나는 외식 대신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시라고 건의했고 아빠의 동의를 얻어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이는 사먹는 음식이 비싸기만 하고 입에 맞지지도 않는데 잘 되었다고 하시지만 나는 은근히 걱정이다. 회사 안의 여러분의 눈도 있고 또 무엇보다도 맛있는 점심이 되어야 할텐데….
오늘은 무얼 만들까? 색색거리고 잠이 든 우리 수아 곁에서 달 지난 여성지의 「페이지」를 넘기며 도시락 반찬 궁리에 머리를 짜본다. 하지만 우리 주부들을 위한 요리 소개에는 모두가 쇠고기 아니면 하다못해 계란이라도 들어가야만 하는 것으로 나에겐 한가지도 마땅한 것이 없다. 물론 경제 사정이 허락한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지마는.
생각하다 못해 책을 덮고 아빠의 식성과 가계부를 맞추어 보았다. 결국은 여름에 고추장 항아리에 박아 두었던 오이 장아찌를 꺼내어 내 솜씨껏 맛있게 무쳐 보았다. 그리고는 김을 알맞게 구워 모아두었던 예쁜 포장지에 싸 넣었다. 결혼 전 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싸 주시는 도시락을 반찬이 마음에 안 든다고 팽개치곤 하던 내가 지금 아빠의 도시락 찬 때문에 이렇듯 궁리가 많으니 그동안 흘러간 세월을 생각하게 한다.
적은 비용으로 알차고 영양있게 아빠의 도시락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하루일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덕분에 가계부의 적자가 메워지고 외식보다 맛있는 점심이 된다면야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김소영(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149)>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