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추적] 용산 개발 백지화 … 옛 철도기지 부지 정화 작업도 올스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아이파크몰 옥상주차장에서 한강 쪽으로 내려다본 용산역세권 개발부지의 모습. 파헤쳐진 곳마다 빗물이 고이면서 큰 웅덩이가 생겼다. 한강 변 아파트 단지 사이로 한강철교가 보인다. [김성룡 기자]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무산된 이후 축구장 33개 면적의 넓은 땅이 서울 한복판에서 잡초가 무성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땅속은 기름과 중금속, 폐기물로 오염돼 있지만 1년 전부터 정화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빗물이 스며들면서 지하수가 오염 돼 한강과 주변 지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용산역세권 사업 부지의 오염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본다.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용산역과 인근 용산 전자상가를 연결하는 구름다리 유리창 너머에는 널따란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1㎞ 떨어진 한강 쪽 아파트단지 앞까지 펼쳐진 넓은 땅 곳곳에는 빗물이 고여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파낸 흙을 쌓아둔 곳은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부지 전체는 철판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었지만 잡초가 무성한 흙더미는 담장 위까지 불쑥 솟아 용산역 KTX 승강장에서도 눈에 띄었다.

 8조원에 이르는 서울 한복판의 알짜배기 땅. 개발이 무산된 용산역세권 부지(35만6492㎡)다. 1905년에 철도차량기지가 세워져 열차를 정비하고 부품에 기름을 치던 곳이다. 당시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시절. 80년대까지도 차량 정비 때 부품에 칠한 기름이 중금속 가루와 섞여 흙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그대로 방치됐다. 폐침목이나 쓰레기를 태운 재 등 웬만한 폐기물은 그냥 땅속에 묻기도 했다는 게 환경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폐기물·토양 정화하는 데 2905억 들어

 이곳엔 전국에서 나오는 보름치 산업폐기물(하루치 2만5850㎥)에 해당하는 쓰레기 38만8000㎥가 묻혀 있었다. 오염된 토양까지 합하면 규모는 69만㎥로 늘어난다. 개발 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이하 드림허브) 측의 의뢰로 2010년 실시된 사업부지 오염 정밀조사 결과다. 25t 덤프트럭 4만6000여 대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코레일 측은 철거 작업을 포함한 전체 공정의 53% 정도가 진행됐지만 정화된 것은 오염토양의 5% 정도라고 밝혔다. 대부분이 부지 내에 남아 있는 것이다.

 오염 정도도 심각하다. 기름성분 오염도는 최고 4만1415ppm에 이르러 토양환경보전법에서 정한 주거지역 기준치 500ppm의 83배다. 중금속인 구리(Cu)도 기준치의 최고 14배, 납(Pb)과 아연(Zn)도 기준치의 최고 32배까지 검출됐다. 오염된 토양은 깊이 12m까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오염 제거 작업이 쉽지 않다. 역세권 개발사업자인 드림허브가 2011년 시설물 철거와 오염정화 작업 사업비로 2905억원을 책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역세권 개발 사업이 무산되면서 오염된 토양과 쓰레기를 정화하는 작업까지 올스톱됐다.

"그냥 두면 오염수 한강까지 영향”

 더 큰 문제는 사업이 방치되면서 오염 물질이 지하수와 한강까지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한강에서 2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지하수가 오염되면 한강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올여름 긴 장마가 이어진 서울지역에는 7월 이후 930㎜가 넘는 비가 내렸다. 광운대 장윤영(환경공학) 교수는 “역세권 사업부지의 지하수 흐름이 한강 쪽으로 이어져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지하수 흐름도 빠른 편”이라며 “오염된 토양을 방치할 경우 한강 본류 등 주변 지역 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부지 내에는 오염 정화를 위한 가건물 10여 동이 설치돼 있지만 작업을 멈춘 지 1년이 넘었다. 용산전자상가 앞쪽에는 토양오염 정화사업을 맡은 S사의 현장사무소가 있지만 직원 1~2명이 나와 있을 뿐이다.

 S사 측은 “2011년 7월 작업을 시작했지만 청구한 공사대금 271억원을 받지 못해 지난해 9월 초 중단됐다”며 “청구하지 못한 공사비까지 포함하면 1000여억원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공사를 계속할 수도 없고, 철수할 수도 없어 현장사무소만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사업부지 경계선을 따라 3~20m 깊이로 시트파일(강철판 말뚝)을 박았기 때문에 오염된 지하수가 주변으로 흘러나갈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시트파일을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지하수가 빠져나가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고 반박했다. 설계상으로 시트파일을 시공하기로 한 전체 15만2395m 중 8만8035m(57.8%)만 설치됐다.

용산구청, 정화명령 어긴 코레일 고발

 서울 용산구청은 6월 초 코레일 법인과 법인 대표를 고발했다. 용산구청 최재린 환경지도팀장은 “정화명령이 내려진 지 4년이 지났기 때문에 고발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토양 정화명령을 내리면 오염 행위자는 2년 내에 토양 정화를 완료해야 하고, 최대 2년까지 허가를 받아 연장할 수 있다. 용산구청은 2009년 5월 코레일 측에 정화명령을 내렸다.

 코레일 용산사업단 관계자는 “현재 사업부지 토지의 소유권 70%를 드림허브가 갖고 있어 오염 정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드림허브 측에 매각했던 토지 소유권을 회복하는 대로 작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이달 초 토지 30%에 대한 소유권을 회복했다. 드림허브 측이 대한토지신탁에 담보로 제공한 토지에 대해 코레일 측이 대금을 상환했다. 하지만 나머지 토지소유권을 코레일 측이 언제 회복할 것인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강원대 이진용(지질학) 교수는 “오염을 계속 방치할 경우 장기적으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역세권 개발사업 추진 여부와 상관없이 오염 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2001년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 등이 출자해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코레일은 부지를 드림허브에 매각했고 철도 관련 시설들은 철거됐다. 하지만 자금난 등으로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올해 4월 코레일 측은 드림허브 측과 맺은 사업협약과 토지매매계약을 해제해 개발 사업은 무산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