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편한데 왜 영어예배 가냐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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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소망교회 어린이 영어예배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영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이날 예배엔 유치원·초등학생 120여 명이 왔다. 김경록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1시30분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 어린이 영어예배가 열리는 지하 1층 예배당엔 유치원생·초등학생 어린이 1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찬송가에 맞춰 율동을 따라 하는 중이었다. 곧이어 한 전도사가 예배 시작을 알렸다. 아이들은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사도신경을 읊었다. 여느 예배와 다른 점은 없었다. 예배를 영어로 진행한다는 점만 빼고는. 예배 한 시간 동안 한국어는 한두 문장밖에 나오지 않았다. 예배 직후 7~8명씩 나눠 진행하는 성경 공부도 영어로 이뤄졌다. 교회 관계자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많아 어떤 반은 영어보다 한국어 설명이 더 길게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준별로 반 편성을 한다는 소문에 대해 또 다른 관계자는 “학년 등 몇 가지 기준으로 반을 나눌 뿐 영어 수준을 잣대로 나누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어예배는 강남의 대형교회 대부분이 운영하고 있다. 서초동 사랑의교회는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 영어예배와 중등 영어예배, 고등 영어예배를 따로 진행한다. 사랑의교회 관계자는 “어린이 영어예배에 등록한 아이는 150명, 중등부는 120~130명, 고등부는 170~180명 정도”라고 말했다.

 양재동에 본관, 도곡동에 별관(교육관)을 둔 양재 온누리교회도 장소마다 유아부와 초등부·중등부로 나눠 영어예배를 진행한다. 도곡동 교육관은 영어로만 진행하고 양재동 KE(Korean·English)예배는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한다.

 강남 교회들이 이처럼 어린이·청소년 영어예배를 몇 개씩 따로 두는 건 처음엔 외국인이나 한국어에 서툰 외국 출신 아이가 많아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요일에 교회 가서도 영어공부 시키려는 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실제로 소망교회는 15~20%, 사랑의교회는 40% 정도만 영어가 더 편한 애들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영어예배를 듣기 전에 레벨테스트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한국말 예배가 불편한 사람만을 위한 영어예배는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곳 중 한 곳이 사랑의교회다. 이 교회 어린이 영어예배에 등록하려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있는 영어면접을 봐야 한다. 교회 관계자가 영어예배 후 이날 예배에서 인상 깊었던 점 등을 영어로 물어본다. 일종의 간단한 리스닝(듣기)·스피킹(말하기) 테스트인 셈이다. 영어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교회 측은 부모에게 “영어예배가 아닌 일반 예배를 듣게 하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우기면 막을 방법은 없지만 교회 신자들은 대개 이를 통과해야 영어예배를 볼 수 있는 걸로 받아들인다. 이 교회의 중·고등부 영어예배는 어린이 예배와 달리 레벨 테스트는 하지 않는다. 누구나 원하면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교회 관계자는 “부모 욕심에 떠밀려 영어예배에 오기 시작했다가도 본인 영어 실력이 버거우면 대개 두세 달이면 그만두더라”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일부 교회는 처음부터 교육용 이중언어 서비스라고 강조한다. 잠실동 주님의교회는 일요일뿐 아니라 수요일에도 어린이 영어예배를 한다. 이 교회 관계자는 “교인 요청으로 만들었다”며 “처음부터 교육에 중점을 둔 영어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예배”라고 설명했다.

 강남 지역의 어린이·청소년 대상 영어예배의 시작은 1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반응이 더 폭발적이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대상으로 제한했지만 사랑의교회 어린이 영어예배 참석자는 250여 명이나 됐다. 한국어보다 영어에 더 익숙한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 요청으로 만들었지만 영어 교육 수요가 더해진 때문이기도 하다.

 이 교회 관계자는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거나 장기간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온 아이가 느는 추세”라며 “교회에서 이들을 위한 예배의 필요성을 공감한 데다 부모 요청도 있어 영어예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이런 취지가 많이 흐려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교회가 신앙생활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자녀 조기영어교육의 장소가 돼버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정석환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행위가 예배”라며 “부모 욕심으로 영어보다 모국어가 편한 어린 자녀에게 무리하게 영어예배를 강요하면 올바른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교회 관계자는 “예배보다 영어교육에 초점을 맞춰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가 적지 않아 우리도 고민”이라며 “영어예배 참석자 절반 이상은 한번도 외국에서 생활하지 않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예배를 중단하겠다는 곳은 없다.

 우선 효과적인 전도 수단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서 아이만 영어예배에 참석시키는 경우도 있다.

 또 원래 목적대로 한국어가 서툴러 영어예배를 찾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이유다. 한 교회 전도사는 “국내에 돌아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했던 아이가 영어예배에 참가하면서 극복한 적도 있었다”며 “이런 게 영어예배를 운영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요즘 강남아이들은 웬만하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영어예배를 막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6년간 한 교회의 영어예배를 다녔다는 김모(13)군은 “나를 비롯해 친구 대부분이 다섯 살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닌다”며 “외국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영어예배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말이 더 편한 어린이들이 예배까지 영어로 보는 걸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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