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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수술 이야기] ⑪첫 심장 이식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나는 흉부외과 의사가 된 이래, 매 순간을 전쟁처럼 살아왔다. 흉부외과에서는 1분 1초의 선택에 생명이 갈린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감염, 거부 반응, 가지고 있던 지병, 수술 후 처치 하나 하나가 다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요소들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것만큼 무거운 짐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내가 하는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만 하는 전쟁이었다.

1992년 10월, 강릉의 한 병원으로부터 첫 기증자에 대한 연락이 왔다. 미리 만들어둔 프로토콜대로, 중환자실을 확보하고, 과별로 연락을 하고, 조직 검사며 기타 필요한 검사들을 모두 대기시켰다. 앞으로 우리 병원의 다른 심장외과 의사들도 수월하게 이식 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가능한 모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프로토콜이었다.

이식을 받게 된 환자와 가족들은 이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기증자가 나타난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수술이었고, 성공적인 결과에 이르기까지 복병들은 너무나 많았다. 단계별로 필요한 요소들을 최종적으로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강릉에서 출발한 차가 서울에 도착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몹시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송 도중 심정지가 왔습니다...”

바짝 긴장해 있던 치료팀들은 모두 한숨을 쉬었다. 싸워보기도 전에 허무하게 끝난 전쟁이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은 기증자여서 이송 도중에 심정지가 온 것이었다. 치료진이야 그렇다 쳐도, 환자와 가족들의 실망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또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약 3주 후, 우리는 인천의 한 병원으로부터 또 다른 연락을 받았다. 그 3주 동안, 우리는 대책을 마련했다. 뇌사 상태인 기증자의 심장을 가장 좋은 상태로 안전하게 병원까지 이송하기 위한 전략이 반드시 필요했다. 첫 번째 실패를 바탕으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연락을 받으면 우리 병원의 치료팀을 그 병원으로 보내서 뇌사 평가 단계부터 이송 단계까지 모두 직접 진행하기로 했다. 연락이 오자마자 신속하게 우리 병원의 팀을 인천의 병원으로 파견했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우리 병원으로 기증자를 데려왔다.

다음 날 오전 7시 30분, 드디어 심장 이식 수술이 시작됐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미국에서 배웠던 것들을 떠올리며 수술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진행하기 위해서 내 머릿속으로 수백번 시뮬레이션을 했던 수술이었다. 병원 전체는 물론, 언론에서까지 관심을 보였던 최초의 심장 이식 수술이었다. 수술 과정 동안 병원의 관계자 수십명이 수술방 주변을 둘러쌌다. 나는 머릿속을 비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수술을 진행해 나갔다. 비교적 수술은 수월하게 진행됐고, 약 6시간 만에 이식이 완료됐다. 그러나 결코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이식 수술에 있어서 전쟁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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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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