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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 차림 출근복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범 답안’이 필요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포토

2005년 여름 일본 정부는 ‘쿨비즈’ 캠페인을 시작했다. 시원하다는 뜻의 영 단어 쿨(cool)과 사업 및 업무를 나타내는 비즈니스(business)의 합성어로, 넥타이를 매지 않거나 재킷을 벗는 등 간편한 옷차림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목적이 에너지 절약이니만큼 실내 온도는 28도로 제한했다. 이 ‘쿨비즈’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엔 총리까지 나서는 캠페인이 됐다. 올해는 여성들에게도 최대한 가벼운 옷을 입도록 권장할 정도다.

우리에게도 ‘쿨비즈’란 용어는 새삼스럽지 않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 단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캠페인이라기보단 패션 업체들의 마케팅 수단에 가까웠다. 브랜드마다 ‘쿨비즈룩’이란 키워드를 내세워 신제품을 냈다. 통기성, 땀흡수성, 자외선 차단 등 탁월한 소재를 이용해 만든 옷들이 얼마나 더위를 피하기 좋을지 설파하면서 말이다. 여름 셔츠나 수트가 으레 ‘쿨비즈’이려니 했다.

한데 올해는 좀 다르다. 옷차림을 바꿔서라도 전기를 아껴야 하는 절실한 상황이 왔기 때문. 한국전력공사·한국석유공사 등 지역 공기업에 이어 SK하이닉스·한미약품 등 일반 기업들도 반바지·샌들 차림을 허용하기로 했다. ‘블랙 아웃’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돼서인지 KBS까지 뉴스 프로그램 출연진이 노타이를 하겠다는 전무후무한 결정도 내렸다. 이 정도면 ‘쿨비즈’가 아니라 ‘수퍼 쿨비즈’의 파격이다.

문제는 제도와 실천이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다. 공기업 지사가 몰린 한 광역시에선 쿨비즈 시행 며칠이 지나도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직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어쩐지 어색한 일이라 누가 먼저 입어주길 기다리는 상황” “업무 시 상대방이 어떻게 볼지 몰라서”란다. 그만큼 반바지·샌들 차림은 무례하다는 국민 정서가 깔려 있다.

그나마 남의 눈이 무서워서라면 차라리 낫다. 일부는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라서라고 말한다. 한 40대 공기업 차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늘 정장만 차려 입던 아저씨한테 갑자기 반바지를 입으라면 그게 더 고민이에요. 양복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셔츠에 타이에 그냥 입으면 되니까요.” 가끔 주변에서도 반바지에 구두, 거기다 긴 양말을 신고 나오는 NG 차림 남자들을 보게 되니 영 이해가 안 가는 얘기가 아니었다.

여름은 갈수록 더워질 거고, 전력 공급도 쉬이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반바지 차림의 ‘수퍼 쿨비즈’ 역시 올해만 넘긴다고 사라질 문화가 아닐 터다. 그렇다면 차라리 격식을 갖추고 스타일링도 쉽게 할 만한 ‘가이드 라인’을 주는 게 어떨까.

‘쿨비즈’의 원조 일본의 사례가 참고가 될 만하다. 일본 역시 출근할 때 정장을 챙겨 나오는 이들이 있는 반면 청바지나 슬리퍼 차림도 많았단다. 그러자 올해는 환경부 장관이 나서 격식을 갖추고도 멋스러운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칼라가 있는 티셔츠, 청바지를 제외한 치노 팬츠, 샌들 대신 스니커즈 같은 식이다. 재미있는 건 휴양지에서나 입을 법한 화려한 무늬의 알로하 셔츠 역시 ‘권장 사항’이란 사실. 어쨌거나 반바지를 허용한 우리는 치노 팬츠 대신 무릎 위 5cm쯤 올라오는 버뮤다 팬츠로 대체하면 간단하다(발목 양말도 필수!).

교복도 아닌데 별 규칙을 다 만든다 싶지만 입는 입장에선 오히려 ‘그림이 그려지니’ 한 번쯤 입어볼 만하다 여기지 않을까. 더구나 튀기 싫은 직장인이라면 비슷비슷한 차림이 마음 놓이지 않을까라는 거다. 참고로 일본은 쿨비즈 시행기간이 6월 첫주부터 9월 말일까지 넉 달간 이어진다. 우리로 보자면 본격적인 더위를 훌쩍 넘어선 기간이지만 에너지 절약도 절약이거니와 ‘수퍼 쿨비즈’가 대중의 눈에 익숙해지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반바지 출근복이 하나의 여름 문화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중앙선데이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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