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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대학살 불씨는 지도층·언론의 ‘증오 언어’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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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04면

1. 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제노사이드 기념관에 전시된 1994년 대학살 희생자들의 사진. 이 기념관에는 25만9000여 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2. 한동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키갈리에 세운 빵공장 ‘라즈만나’. 현지인 채용 공고를 내자 고학력 지원자가 100명 넘게 몰렸다. 3. KOICA 새마을봉사단이 무심바 마을에 조성한 논. 르완다에선 쌀이 귀한 먹거리다. 노재현 기자

르완다 대학살(1994년)은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일까. 박선기 변호사(59·법무법인 대동)는 유엔 국제형사재판관으로 뽑혀 2004년부터 8년간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에서 학살 연루자 재판을 맡았다. 박 변호사는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이 당시 후진국이었느냐”며 “극단주의와 이분법적 사고가 횡행하는 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제노사이드(대학살)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전에서 부흥으로 … 르완다를 가다

그는 “르완다 비극의 핵심은 온건주의자들이 종족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극단 이념주의자들에게 당했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모든 인간에겐 욕심과 미망(迷妄)이 잠재돼 있는 만큼 이를 아프리카 소국에서 벌어진 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박 변호사는 “증오 언어(hate speech)를 쓰지 않는 것, 평상시 신중하고 성숙된 언어를 구사하는 훈련을 하는 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방문한 키갈리 시내 제노사이드 기념관. 내부는 르완다 학살 전시관, 아우슈비츠 등 외국의 학살 자료 전시관, 그리고 어린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수북이 쌓아놓은 희생자 유골과 주인 잃은 옷가지들, 참혹한 현장 사진…. 너무 끔찍한 전시물 앞에서 관람자들은 한결같이 눈을 돌렸다. 기자가 가장 오래 머무른 코너는 학살 전야에 난무했던 지도층 인사들의 증오 발언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역시 정치인과 언론인·종교인 등 지식인들의 책임이 가장 컸다.

유죄율 65% 기록한 가차차 법정 막내려
르완다의 비극은 정치인의 무차별 선동과 언론의 맞장구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영화 ‘호텔 르완다’에 등장하는 악명 높은 라디오 방송 RTLM은 93년 당시 대통령과 거물 정치인들의 모금과 지원 아래 설립됐다. 후투족이 움직이는 24개 신문과 ‘캉구라(Kangura)’ 같은 잡지들은 지속적으로 투치족에 대한 증오 언어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두 종족의 혐오감을 확산시켰다. 캉구라는 “투치가 생존자를 남기지 않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후투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며 선제 공격을 유도했다. 유명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비킨디)도 노래로 증오를 부추겼다.

일부 종교인도 가세했다. 대학살 기간 중 피난민 5000명이 모인 가톨릭 성당을 후투족 폭도가 불도저로 부수고 들어가 전원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가톨릭 사제(아타나세 세롬바)도 여기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후일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르완다 사태를 계기로 국제형사법계는 제노사이드를 부추긴 정치인·언론인의 선전·선동 행위를 중대한 범죄 유형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대학살의 상처를 거울 삼아 2003년 개정된 현행 르완다 헌법은 제노사이드에 대한 반성과 화해·통합 의지로 가득하다. 국가의 기본원칙으로 ‘집단 종족학살의 이념과 종족 제거·지역 구분에 대한 저항권’을 규정했다. ‘국가 통합의 증진’과 ‘공정한 권력분립’도 내세웠다. ‘누구든지 임의로 생명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제12조), ‘집단 종족학살의 죄, 반인류 범죄 및 전쟁범죄는 공소시효를 갖지 아니한다’(제13조), ‘르완다 국민은 르완다에서 추방되지 아니한다’(제24조), ‘국가는 집단 종족학살 기념비와 현장 및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할 의무를 진다’(제51조)는 조항도 눈에 띈다. 다당제를 채택했지만 ‘혈통, 인종집단, 종족, 씨족, 지역, 성별, 종교 또는 기타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구분에 근거하는 정당은 허용되지 않는다’(제54조)고 못 박았다.

어제까지 이웃이던 사람에게 당한 비극. 종족의 씨를 말린다는 명목으로 여성 25만 명을 강간하고, 부모를 먼저 고문·살해한 뒤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참혹한 사건을 국가 공권력만으로 단죄하기란 불가능했다. 학살이 끝난 후 르완다 법관 758명 중 244명, 검사 70명 중 12명만이 살아남았기에 사법제도 자체도 붕괴된 상태였다.

RPF(르완다 애국전선)가 주축이 된 새 정부는 100만 명이 넘는 학살 관련자를 처리하기 위해 르완다 전통의 가차차(Gacaca)를 활용했다. 가차차는 현지 언어로 ‘마을 주민들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모이는 풀밭’이라는 뜻이다. 2001년 전국 1만2100개 마을에 가차차가 설치됐다. 가차차에 나온 가해자가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면 법정에선 대체로 낮은 징역형이나 공익형 노역을 선고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집에서 일하거나 소 같은 개인 재산을 제공하는 방법도 동원했다. 거꾸로 학살 주동자임에도, 자백을 거절하거나 주민들이 자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 속도를 높이려는 목적 외에 국민 화해·통합의 큰 의도가 깔린 지혜였던 것이다. 가차차 법정은 약 65%의 유죄 선고를 내린 가운데 지난해 6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폴 카가메 대통령은 가차차 업무 종료식에서 “우리는 복수할 수도 있었다. 그냥 사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고 가차차 법정을 통한 국민 화합과 국가 통합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르완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당초 10만 명이던 사법처리 대상 중 잘못을 고백한 범죄자를 여러 차례에 걸쳐 석방했다. 2005년 3만6000명, 2007년 8000명 등이다. 권력을 빼앗긴 옛 후투족 출신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인종 구분이 금지돼 있어 각료들의 출신 종족을 공식적으로는 밝히지 않지만, 총리 외에 18개 부처 장관 중 절반 가까이가 다수족(후투족) 출신으로 추정된다. ‘공정한 권력분점’이라는 헌법 정신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황순택 주 르완다 대사는 “아프리카의 최빈국이던 나라가 100년 전 식민지 세력이 심어놓은 분열과 대학살의 상처를 딛고 범국가적 화해·통합을 도모하는 과정을 보면 실로 경의를 표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통일 과제 풀어야 할 우리에게도 시사점
그러나 이런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제노사이드의 후유증을 치유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94년 이후 많은 후투족이 이웃 DR콩고(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으로 달아나 반정부 게릴라로 변신했다. 투치 계열 반군(M23)도 광물자원이 풍부한 이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카가메 대통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르완다가 M23을 지원한다고 간주해 원조를 줄이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외국 원조가 국내총생산(GDP)의 10%, 국가예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가 등을 돌릴 경우 르완다는 경제난과 정국 불안에 빠질 게 뻔하다.

카가메 대통령은 2003년 선거에서 승리한 뒤 2010년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7년 중임이 가능하다. 따라서 카가메의 임기가 끝나는 2017년이 정국의 분수령이다. 현지에선 카가메가 3선 개헌을 단행할지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운다. 비록 권위주의적이긴 하지만 대학살 이후 지속된 정치 안정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정국 불안에 사회적 갈등이 겹칠 경우 모처럼 성사된 국민통합과 경제발전의 모멘텀을 잃을 수 있다.

르완다의 대학살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국민 통합·화해가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의 전제조건이고, 통합·화해를 위해선 개인·집단 사이의 상호 배려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지도층과 언론의 증오 언어는 모든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8년간 현지 생활을 했던 박선기 변호사는 “어느 날 갑자기 남북 통일이 이뤄져 3000만 북한 주민이 한 식구가 됐을 때, 과연 증오를 부추기고 정치적으로 악용할 세력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황순택 대사도 “우리도 르완다의 NURC 같은 국가기관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남북 화합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통일이 될 경우 북한의 잘못된 이데올로기와 세습체제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데 적지 않은 노력과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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