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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 송환자의 자유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KAL기 납북사건의 마지막 열쇠는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국제관례상 그 길은 네 가지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정말 자유로운 자유의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가 또한 문제이다.
가령 중립국 인사나 국적의 직원이 북괴로 가서 그 의사를 묻는 방법 따위는 별로 기대 할만 한 것이 못된다. 우선 입지조건이 자유롭지 않다. 제삼국으로 미송환자를 인도하는 방법은 입지조건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북괴의 인도주의적인 성의에 달렸다.
간접타진 방법도 역시 회의적이다. 또 하나, 53년 반공 포로. 석방 당시의 방법은 판문점에서 중립국감 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의사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실오리 같은 분계선 상에 올라서서 한순간에 흑백의 판단을 내려야하는 심리적인 압박감은 자유로운 의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끈을 쥐고 있는 것은 저편이지 우리 쪽은 아닌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직전의 상황을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만일에 환각제라도 복용시킨 상태에서 출두시킨다면 이것은 자유의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외국작가의 이런 소설이 있었다 .한국동란 당시 중공의 포로가 된 한 미군병사의 이야기다. 그는 중공에서 몇 달 동안 세뇌를 당한다. 그 과정 중엔 카드·플레이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조건반사와 같은 원리를 이용했다. 퀸이 나오면 의식이 몽롱해진다. 한번도 아니고, 이것을 끝도 없이 지겹도록 반복한다. 나중엔 어떤 자리에서나 퀸이 나오면 그 미군은 혼미한 상태에서 강박 된 판단을 해야만 한다. 그는 드디어 석방, 미국에 송환된다.
그러나 이 퀸의 혼미 속에서 깨어나지는 못 한다. 그 때의 무의식은 그를 하나의 조작인간으로 변화시켜 버리다. 이미 그 미군병사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조작된 기계에 불과했다. 세뇌의 제1과는 똑 같은 동작의 끝없는 반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모든 팩트(사실)를 단순화한다.
지금 북괴는 그런 것에 열중해 있을지도 모른다. 전율과 공포를 자아내는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사태는 어두워만 진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강도와 타협을 해야하는 식의 국제도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세계의 자유시민은 마땅히 인류의 양식에 호소하는 우리의 심정을 이해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문명인의 긍지이며 또한 인간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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