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권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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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보는 사람에 따라,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갖가지로 해석되겠지만, 개표과정에서 수없이 발표된 통계표를 놓고 가슴아프고 허전했던 것은 기권자수. 가령 18일 오후 2시 현재 96%의 개표결과를 기록한 것을 보면, 유권자수 1천5백여만명중 기권자가 3백50여만명으로 약 24%를 넘었고, 그 당시집계론 부표수를 상회하는 수효였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통지표를 사장했을까하고 궁리해 본다. 내 한표로 대세가 좌우될리 없으니 낚시질이나 가자는 심정이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개헌도 반대요, 개헌안하는 것도 반대, 『살 것인가, 살지 말 것인가-그것이 문제로다』하는 「햄리트」식의 고민으로 투표일 하루를 보낸 것일까.
내 한표와 대세와는 관계가 없다는 생각은, 「소크라테스」시절에 날뛰던 궤변논자들의 망상이다. 사람이 병이 나면, 결국 죽거나 낫거나 둘중의 하나니까, 의사를 댈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햄리트」의 고민은 투표행위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생사에서는 부질없는 것이다. 인생사의 대부분은- 실상 그 전부가 선택의 문제이고, 양단간에 결정을 지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아래서, 민주시민이 해야하는 선택은 최선의 이상적 가치만을 택하라는 것이 아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골라 잡아야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연극의 주인공으로서의 「햄리트」가 어떤 위인이었느냐 하는 것은 「세익스피어」학자가 알아서 따질 일이지만, 투표장에 끝내 나타나지 않은 「햄리트」는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숫제 비겁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찬성이면 찬성, 반대면 반대, 두 가지중에 하나다. 도시 투표라는 것은 연극도 아니고 인식논도 아니다. 우리는 진통선거권을 너무 쉽게 얻었다. 어떤 「로마」황제가 기독교에 귀의하자, 폐하의 전 신민이 하루아침에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고사와 흡사하다. 정치학자들이나 시사해설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같은 민주제도를 가지고도 선진국과 후진국에서는 서로 상이한 양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보다는 너무 귀한 것을 너무도 쉽사리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귀한 줄을 모른다는 상식론이 더 알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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