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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 유죄인가 무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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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경제난의 책임자 명단에 거장의 이름이 올랐다.

미국 경제와 주식 시장이 겪는 고통의 주범으로 거명되고 있는 비도덕적인 최고경영자(CEO)들과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 무능한 정부 관리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들은 이 명단의 맨 위에 사람들이 들으면 놀랄 만한 한 사람의 이름을 올려 놓았다. 바로 앨런 그린스펀이다.

그렇다. 단지 말 한마디로 세계 시장과 경제를 조절하는 놀라운 능력으로 찬사를 받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의장 그린스펀. 인플레이션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던 그 사람이다.

그린스펀을 비판하는 측은 1990년대 말 주식시장에 터무니없이 부풀어 올랐던 거품의 책임을 그에게 돌린다. 이 거품이 투자 과잉을 낳았고 경제를 과열시켰으며 인플레이션 위험을 조장했다. 그래서 연준은 1999년과 2000년에 금리를 인상해야 했고 이는 2001년 3월 시작한 불황의 원인이 됐다.

그랜트 인터레스트레이트옵서버의 편집장 제임스 그랜트는 "그는 매우 서투른 중앙은행장"이라며 "해로운 거품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맞닥뜨렸을 때 소극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이 미리 손을 썼더라면('비이성적 활황'이라는 모호한 표현의 경고는 쳐주지 않는다) 거품은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거품 붕괴 역시 그토록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랜트를 비롯한 비판자들의 말이다.

이에 대한 연준 관리들의 반응은 취재할 수 없었다.

그랜트는 "하다못해 그린스펀은 거품에 대해서 자주 경고를 하거나 공매(Margin buying) 요건을 강화하는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준은 공매 요건을 통제하고 있지만 1974년 이후 여기에 손을 댄 적이 없다. 공매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게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방식이다. 공매 과잉은 투기를 부추긴다. 연준은 증권사들의 대출을 단속할 수 있었다.

또 그린스펀은 자신의 견고한 신화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태도를 취하는 방법으로 자신과 연준이 세계의 모든 금융 문제를 기적처럼 해결할 수 있다는 세간의 기대를 낮출 수 있었다.

그랜트는 "사람들은 그린스펀에게 통찰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쳇, 내 덕분이 아니라 경기 주기가 그렇습니다. 나는 연준 직원입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연준 관리들을 과신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연준이 1990년대 말 단기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금리 인상은 과대 포장된 닷컴 주식, 광섬유 케이블 등 어리석은 투자에 유입되는 자금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랜트는 이에 대해 연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기꺼이 연준에게 화살을 돌린다.

아놀드 앤 S. 블레이슈뢰더의 경제전략가 제임스 파디나에 따르면, 1990년대 말에 상대적으로 완만한 금리 인상(이를 테면 6개월마다 0.25%포인트씩)이 이뤄졌다면 월스트리트의 불만은 샀겠지만 거품을 통제할 수 있었다.

파디나는 "경기 과잉이 절정에 이르러서야 연준이 개입했다. 이때 행해진 대폭적인 금리 인상은 경제에 지나친 충격을 줬고 결국 급속도로 경기가 침체했다. 연준은 다시 급속히 금리를 인하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을 위한 변명

파디너는 "그러나 그린스펀은 뛰어난 위기 관리자다. 그린스펀의 전설은 1987년 주식시장 붕괴, 1998년 아시아와 러시아 경제 위기,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등에서 연준이 신속하고 안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생겼다"고 말했다.

그린스펀 옹호자들의 수는 많다. 이들은 강한 경제가 인플레이션 경제가 됐고 부진한 경제가 불황이 됐던 정확한 변곡점을 나중에 찾기는 쉽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미리 이런 변곡점을 완벽하게 방지하는 정책 시점을 찾는 것은 운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준은 주식 시장에 책임이 없다. 연준의 역할은 두 가지로 인플레이션을 막고 경제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과거 연준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했던 플릿 보스턴 파이낸셜의 웨인 아이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린스펀은 경기 침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릴 이유가 없다"며 "연준은 자산 시장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권한이 없다. 거품을 줄이기 위해 통화정책을 사용하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어스는 이어 "그린스펀은 분명히 사람들의 재산을 보호해 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만약 그가 그렇게 했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스펀을 옹호하는 측은 또 연준이 여러 해 동안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막아내면서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강력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고 지적한다.

역시 연준 이코노미스트로 있었던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 이코노미스트 라라 레임은 "그린스펀은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며 "그가 조치를 취하고 싶었다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엔론이나 월드컴 같은 사건들로 연준은 이런 사건들에 대해 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월스트리트 관계자들은 연준이 위기를 빨리 파악하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1990-91년 불황에서 경기 회복이 지지부진하면서 결국 지지자들을 잃고 연임에 실패한 부시 전 대통령과 비슷한 경우다.

일본 증후군

현재 연준의 목표 단기금리는 1.75%로 40년 내 최저 수준이지만 경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경제 전문가들은 또 한 번의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고 우려하며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한편, 미국을 금리가 0에 머물러 있지만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일본과 비교하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은 근본적으로 일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해의 저금리는 소비자들의 과도한 부채와 주택담보대출을 부추겼다. 이는 해고 증가와 신용 요건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또 한 번의 경기 침체가 온다면 미국 소비자들은 더 이상 돈을 빌릴 마음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이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카고에 있는 노던 트러스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 카스리엘은 "우리 경제는 전후 가장 부채가 많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면 경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렇다고 금리를 현상 유지하거나 낮춘다고 해서 또 한번의 경기 침체를 피해갈 수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카스리엘을 비롯한 연준의 현재 방식에 비판적인 측은 일종의 자동조종장치에 기반한 통화정책을 선호한다. 즉 차입 수요가 클 때 통화 공급량을 죄고 차입 수요가 작을 때는 돈줄을 푸는 식이다.

카스리엘은 "연준은 가격 조정자로서 단기 대출 금리를 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 수요가 늘어나면 금리는 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연준이 금리 인상을 막는 것을 목표로 대출 금리를 조정한다면 연준은 추가적인 준비금을 마련하거나 은행들이 더 많은 자금을 창출하도록 한다. 바로 이것이 거품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말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다. 이 돈은 엄청난 규모의 스톡옵션을 발생하는 데 따른 주식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주식을 되사는 데 쓰였다. 연준이 자동으로 조종됐다면 기업의 차입이 증가할 때 금리를 올렸을 것이고, 그랬다면 기업들은 그토록 많은 빛을 지지 않았을 것이다.

통화정책에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그린스펀 의장 개인에 대한 숭배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감세 등에 관한 그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그린스펀은 재임 기간 내내 감세에 대한 견해를 밝혀 왔고 이는 재정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실 감세는 그가 간섭하지 말아야 할 영역이다.

카스리엘은 "그린스펀이 의회에 갔을 때 의원들은 통화정책만 빼고 모든 것을 물었다"며 "중앙은행장이 전지전능한 경제 정책의 일인자로 대접받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것은 그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부분적인 방임주의 성향을 보이는 제임스 그랜트는 연준 의장 직위에 대해 급진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그는 "내가 연준 의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다면 내 변함없는 대답은 '사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NEW YORK (CNN/Money) / 이인규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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