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북핵' 10년전과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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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북한 핵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벌써 10여년 전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면서 이 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이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위협과 '불바다'발언, 미국의 영변 폭격설 등으로 급박하게 이어졌다.

당시 유럽 주재 한국특파원들은 시도 때도 없이 IAEA 사무국이 있는 빈으로 날아갔다.

베를린에 주재하던 기자도 족히 열번은 넘게 빈에 출장을 갔고, 폐연료봉.방사화학실험실 등의 용어와 씨름을 해야 했다.

마침 그 무렵 국내에선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휘소 박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로 한.일간에 전쟁이 발발,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다 남북이 공동개발한 핵무기로 일본을 제압한다는 통쾌한 픽션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시영 오스트리아 대사는 "재미는 있는데 국민들이 북핵 문제를 이런 식으로 오해할까 겁이 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 핵무기로 가장 큰 위협을 받는 나라는 바로 우리이며, 이는 일본 등 주변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져 동북아 정세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어쨌든 북핵 문제는 94년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에서 일괄타결에 합의하면서 일단 끝났다. 제네바를 끝으로 더 이상 이 문제로 출장 갈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2003년 2월, 기자는 다시 빈에 왔다. 10여년 전과 똑같은 북핵 문제 때문이다. 다시 찾은 빈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내 한복판에 우뚝 솟은 슈테판 성당의 고색창연한 자태는 여전하고, IAEA 사무국을 가기 위해 건너는 도나우강도 언제나 그랬듯 잔물결을 일으키며 유유히 흘러간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북핵 문제가 10년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시영 대사의 우려가 이미 현실이 됐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는 등 전세계가 우려를 보내고 있지만 남한의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는 게 서울발 외신들의 보도다.

그저 10년 전 같은 라면 사재기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발등의 불'을 '강건너 불'로 보는 이 착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IAEA 건물을 나서는 발길이 무겁다. <빈에서>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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