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업' 열기구 조종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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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이 하늘을 날고 있는 열기구에 탄 케빈 올슨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 델라웨어 강을 내려다 봤다. 올슨은 청록, 노랑, 하얀색으로 칠해진 기구의 엔진을 멈추고 800파운드(약 363kg)짜리 기체를 비누방울처럼 사뿐히 투명한 강물위에 내려 놓았다.

잠시동안 강물을 따라 흐르던 올슨이 연소기를 점화하자 '쉭'소리를 내며 기구 속으로 다시 뜨거운 열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구는 언덕을 넘어 작은 집들과 벌판 위로 둥실 떠올랐다.

뉴저지주 알렉산드리아시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 기구 항공사'의 올슨 사장은 "기구를 처음 탄 순간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걸 알았다"라며 기구 비행사가 자신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직업이라고 자랑스럽게 털어놓는다.

"지금까지 거의 4천회 정도 비행했으며 지난해에는 1만번째 탑승객을 태우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한다"고 올슨은 말한다.

30여년간 비행
올슨은 전세계 기구 타는 이들의 친구가 돼왔다. 그는 포브스 기구팀과도 함께 비행한 바 있으며, 처음 기구를 타본 이들이 발 아래 놓인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엄청난 기쁨도 지켜봐왔다.

"많은 이들이 기구를 탄 것이 인생 최고의 순간(혹은 최고의 순간 중 하나) 이었다고 말했다."

올슨은 올해로 29년째 기구 비행을 하고 있다. 그동안 그는 뉴욕 센트럴 파크의 널따란 잔디밭에서부터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말콤 포브스의 저택, 애틀랜타 주 도그우드 축제,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의 황토색 대지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곳을 기구로 날아다녔다.

올슨이 처음 열기구를 만난 것은 1973년 뉴저지 주 프린스턴 근교의 자기 집에서였다. 당시 올슨이 하늘을 나는 기계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올슨은 겨우 열다섯 살 때 인근 공항에서 비행기를 청소하고 잔디를 깎는 조건으로 비행훈련을 받았다. 그 후 올슨은 미 공군에 입대해 전투기를 조종했고 지금은 사라진 이스턴 항공사에서 민간 항공기를 조종하기도 했다.

그토록 수많은 시간을 하늘에서 보냈지만 당시까지 단 한번도 열기구를 본적이 없었던 올슨은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기구가 천천히 자기 집 위를 떠다니는 것을 보고 흥분을 느꼈다.

올슨은 "차에 올라타서 기구를 쫓기 시작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기구가 착륙하자 올슨은 조종사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고 그에게서 얼마 전 프린스턴 대학 졸업생이자 열렬한 기구광인 포브스의 후원으로 프린스턴 대학에 기구 동호회가 창설됐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결국 올슨은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용 비행기 조종사로 취직해 외부인에게는 가입이 금지된 이 동호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올슨은 별다른 비용 부담 없이 기구 비행을 할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좀 더 많이 비행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는 4천 달러를 주고(일반 시판용 기구의 판매가는 대략 3만 3천달러 수준) 중고 기구를 장만해서 친구들에게 기구를 태워주기 시작했다.

취미가 직업으로

몇 년 후 올슨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알렉산드리아 기구 항공사를 차리게 된다. 그 후 1991년 이스턴 항공사가 도산하면서 그는 기구 비행을 정식 직업으로 삼게 된다. 그는 새로이 마케팅과 회계학, 기상 관측 기술 등을 배워야 했다.

올슨은 "이윤이 생기고는 있지만 큰 부자가 될 정도는 아니다"라고 털어놓는다. 매번 비행마다 95리터 가량의 프로판 가스가 소모되며 미 연방항공국 연례 감사와 보험 및 광고 등에도 비용이 든다. 5명의 항공사 직원들은 '자동차로 기구를 따라와' 자신의 원래 직장을 버리고 기구 비행 및 비행 훈련을 업으로 택한 이들이다.

일년 중 약 8개월 정도 날씨가 허락될 때만 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올슨의 수익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운이 좋으면 한 해에 160여 차례 비행할 수도 있지만 대게는 130회 정도다. 그의 고객들 중 대부분은 기구 이륙장에서 약 한 시간가량 떨어진 뉴욕시나 필라델피아 인근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1인당 160달러를 내고 3시간 가량 모험을 즐기게 된다. 여기에는 기구 내 공기 주입에서부터 이륙, 한 시간 동안의 비행,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즐길 수 있는 샴페인과 전체요리가 포함돼 있다.

올슨은 매번 비행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샴페인을 한 병씩 기구에 싣는다. 기구 여행은 바람과 날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어디에 착륙하게 될 지 결코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종종 사유지에 착륙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주인이 친절히 용인해 줄 때 마다 올슨은 감사의 표시로 샴페인을 내놓는 것이다.

51쌍 청혼 이루어져
올슨은 기구 탑승객들을 더 많이 받으면 수익을 더 올릴 수도 있겠지만 소규모의 사람들끼리 통하는 친밀감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말한다.

자기들끼리 만의 은밀한 비행을 위해 기구를 빌리는 남녀들도 많이 있다. 기구 비행 중 청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슨은 지금까지 51쌍을 봐왔다.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커플들도 있다. 한 친구는 기구 밖으로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를 떨어뜨리고는 깜짝 놀란 약혼녀에게 진짜 약혼반지를 선사하기도 했다.

한 까탈스러운 공인 회계사는 올슨과 일주일을 투자해 비행 계획을 세웠다. 그는 서너 장의 침대 시트를 사용해 정성스럽게 '캐런, 나와 결혼해 주겠소'라고 씌어진 거대한 플래카드를 만들어 자기 집 지붕에서 자신과 올슨이 탄 기구에까지 연결시켰다. 기구가 착륙한 후 그 젊은이는 착륙 장소까지 기구를 따라온 하얀색 대형 리무진에 자신의 약혼녀를 잽싸게 태웠다.

Leslie Haggin Geary (CNN/Money) / 오병주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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