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안정계획의 IMF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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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올해 재정안정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된 재정안정계획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모를 엿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재정안정계획의 협의과정이 기본적으로 수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70년부터는 종래와 같이 「유세이드」와 이 문제를 협의하지 않기로 했고, 올해 계획도 상반기분만 「유세이드」와 협약 확정했을 뿐, 연간 계획은 IMF협정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통화량 규제방식을 종래와 같이 재정·금융·외환의 3부문으로 나누지 않고 한은창구만을 규제하는 이른바 「리저브·베이스」방식으로 규제키로 한다고 함으로써 유세이드와 IMF에 따로 따로 다른 방식에 의하여 협약하던 것을 IMF협약으로 일원화시켰다.
세째 상반기 계호기에 있어서 부문별 통화증감한도를 정하지 않고, 재정부문만 규제하고 나머지는 총량 한도만을 정한 것도 주목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재정안정계획이 그 계획의 작성방법에서나 운영 방식에서 모두 커다란 수정을 받게 된 것은 주한「유세이드」의 지위변화와 정부의 입장 강화에 기인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미국 대한 무상원조의 직접 관장기관이던 「유세이드」가 한국의 국내정책에 개입할 수 있었던 지난날의 역학관계는 이제 지원원조 규모가 고작 연간 2천만달러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서 그 힘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그 당연한 귀결로 우리의 국내정책은 상대적인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것이다.
「유세이드」와의 협의가 지양되고, 그것이 IMF협약으로 대체된 것은 그 뜻이 전혀 달라진다는데 의의가 있다. IMF는 국제기관이며 또 우리가 IMF차관을 얻으려 하지 않는 한, 우리의 국내정책은 완전히 자율성을 갖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통화량 규제방식에 있어 「리저브·베이스」로 수정하는 문제는 「유세이드」방식보다 훨씬 협약이행이 까다로울 것이란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리저브·베이스」는 계수조작의 절위를 매우 축소시키기 때문에 앞으로 협약이행을 위해서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량 증가한도를 연간 3백억원으로 정한다면 「리저브·베이스」증가한도는 2백억원 이하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리저브·베이스」를 2백억원 정도 늘려 가지고서는 지금 수준의 통화량을 실질적으로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량을 지금보다 실질적으로 늘리려면 지준예치금계수를 크게 조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 그것은 한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상반기 안정계획에서 재정부문의 한은 차입한도를 10억원으로 규제하고 그 대신 각종 채권발행으로 2백25억원을 조달케 한 것은 「리저브·베이스」증가를 억제하는데 의의가 있을 뿐, 재정부담이 금융에 미치는 주름살을 변화하지 않는 것임을 지적할 수 있다. 한은이 발권하고 그것을 금융자금의 활용억제로 상살 시키거나, 발권을 억제하고 그 대신 채권을 금융기관이 인수하거나 민간부문에 미치는 압박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은이 발권을 계속하고 그 때문에 유발된 예금증가가 있는 경우보다 금융기관의 채권인수에 의한 재정자금원은 민간부문의 자금사정을 더욱 핍박하게 할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외환부문의 움직임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외환부문에서 통화를 종래와 같이 막대하게 창조한다면 「리저브·베이스」의 증가 템포는 수습할 수 없을 이만큼 빠를 것이다. 반대로 환률 조정이나 국제수지압력 때문에 외환부문에서 통화를 환수하기 시작한다면 「리저브·베이스」를 유지하기는 쉽지만 금융 비난 현상이 문제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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