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책동네] '만화 서양미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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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서양미술사 1~5/다카시나 슈지 외 엮음, 이수홍 감수, 정선이 옮김/다빈치 펴냄, 각 권 1만2천원

2만년 전 원시인이 라스코 동굴에 그린 동물 그림은 회화일까, 만화일까. 벽에 들소를 그리며 그들을 먹을 거리로 잡게 해달라고 빌었던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건 회화니 만화니를 떠나 생존 문제가 걸린 제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눈에 익살스럽게 그려진 '달리는 소'는 미술의 탄생이자 만화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인다. 동굴 벽화에서부터 만화가 있었다.

만화와 미술은 둘 다 이미지 예술, 시각 예술이라는 점에서 경계가 그리 분명치 않다. 만화가 그림과 말의 결합 형식을 띠고 있기에 이야기 솜씨가 주는 재미가 더하다는 강점이 있다. 그림 그리기도 만화가 더 자유롭다.

그럼에도 만화가 '제9의 예술'로 예술 계보에 꼴찌로 오르기까지 미술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홀대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미술과 만화가 만났다. 세상의 온갖 일을 만화로 바꿔 봐야 직성이 풀리는 듯 보이는 일본인이 서양미술사를 만화로 풀어냈다.

서양 근대미술사를 전공한 다카시나 슈지(高階秀爾)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엮은 '만화 서양미술사'는 단순히 미술사를 만화로 본다는 것 외에 만화와 미술이란 이 이란성 쌍둥이가 어떻게 다른가를 계속 견주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다섯 권 짜리 책에서 미술 도판과 이렇게 저렇게 엮여 이야기꾼으로서의 문학 예술적 힘을 뽐내는 만화는 미술보다 만화가 왜 더 대중적인 매체인가를 체험하게 만든다.

제1권 원시 미술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까지로부터 제5권 피카소와 20세기 미술까지, 시대순으로 서양미술사를 정리한 시각은 평범하다. 인상주의와 반 고흐를 다룬 대목에서 당시 유럽과 유럽 문화계가 매혹되었던 '일본식 취향'을 특히 강조한 것은 일본인 저자다운 편향이라 하겠다.

다 빈치, 렘브란트, 쿠르베, 세잔 등 중요 작가 15명의 삶과 작품 세계를 따로 만화로 구성했으나 자잘한 일화에 너무 치중한 감도 있다.

그럼에도 이미지가 풍부한 미술사까지도 만화 이미지로 거듭 변주하는 일본인들의 집념은 대단하다. 초기 만화의 창시자라 할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나 프랑스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 만화가라 불러도 무리가 없는 보슈와 브뤼겔, 글과 그림의 결합이 빼어난 고야의 회화들이 모두 만화 속으로 녹아 흐르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때로 만화가 조금 거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연령 초월의 즐거운 문예물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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