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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새벽4시의 공동수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새벽4시! 사발시계의 요란한 소리에 놀라 깨어보면 그이는 세상을 잊은 듯 잠에 만취해 계시다. 차마 안스러워 흔들지를 못한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여보』『여보』『여보』 점점 높게 그리고 세차게 흔든 뒤에야 겨우 뜨는 희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물!』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다. 『또 안나왔어?』 역정 비슷이 말한다. 1주일에 한번정도 그나마 2시깨에야 나오곤하던 물이 간밤에도 소식이 없었느냐는 물음이다. 나왔으면 왜 사방시계가 소리치게 놔두었을까. 뻔히 알면서도 귀찮다는 표현임에 틀림없겠지.
그이는 물지게를, 나는 양동이·양은함지박까지 들고 공동수도로 달려 내려간다.
오늘은 1착으로 왔겠지하며. 그러나 골목을 돌아서면 가로등 밑에 번쩍이는 행렬. 몇십분을 기다리다가 물 한지게를 지고 비딱거리며 비탈을 오르는 그이의 뒷모습을 바라 볼 때마다 어떤 울분이 가슴을 치솟는다.
며칠전 신문을 떠들썩하게 메웠던 수도물 10만톤 증산이라고 하던가. 그 뒤에 우리집 수도꼭지의 경우엔 더 나빠진 것이 확실하다.
윤중제가 완공이 되고 몇백억원을 들여 무슨 도로를 건설해서 어떻게 한다는 말들이 주먹만한 활자로 신문을 장식한다
거리를 거닐어 볼라치면 며칠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육교가 생기고 그리고 그 육교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지고 지하도가 생기고 머리위로 자동차가 달리는 고가도로등 무서운 속도의 발전에 눈이 부시다. 그러면서도 이 주부의 조그마하고 절실한 소망, 물좀 마음대로 마시며 아가의 기저귀 빨때에 때가 덜 빠지는 일이 없게 되어 질 수는 없을까. 그런 때는 오지 않을 건가. 몇 만원을 주고 설치한 수도꼭지가 집안의 장식품이 되어버렸고 그 장식품을 두고 산다는 죄(?)로 기본요금을 물어야하고. 공동수도에서 사먹는 물 값을 대야하는 이 소시민의 비애를 해결해주는 그러한 행정은 바랄 수가 없는 것일까.
오늘도 그이가 만취해서 내일 새벽에 일어날 수 없게 된다면 큰일이다.
설마 수도관이 녹슨지 열흘이 지났으니 오늘밤에야 나오겠지 기다려 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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