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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각장학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정 청운각의 여주인조차임씨(58)가 평생모은재산 2억여원을 육영사업에 내놓고 지난6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씨는 고급요정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청운각의 주인이된것은 16년전 1953년봄. 함흥태생인 조씨는 6·25때 조흥은행중역으로 있던 남편 한재경씨가 납북되자 단신 부산으로 피난가 술장사를 한것이 그시작.
조씨는 부산서 유일한 혈육인 오귀양(배화여중3년)을낳아 서울로왔다. 낙원시장입구에서 산형이라는 술집을 2∼3년했다.
『무척 억척스러웠다는 친동생 성임씨의 말대로 억척스럽게 돈을 번 그는 서울종로구 청운동53의 26에 자리잡은 전 부통령 이시영씨의 저택을 그 가족들로부터 빌어 청운각이라 이름지어 고급 요정으로서 영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모은 재산이 10억가까왔다는 소문이 날정도로 그는 돈을 벌었지만 벌어서 썩힌것만도 아니라고 주위사람들은 말하고있다.
지난66년 가을 자궁암의 진단을 받기까지 강모(29) 이모씨(31)등 불우한 대학생들에게 학비까지 대주며 공부시켜 사회에 진출시켰다. 조씨는 또한 비참한 일이나 급한일이 일어났을때 선뜻 의연금을 내놓기도 했었다.
지난3월 병세가 악화되자 그는 재산을 정리, 육영재단을 만들고자 서둘렀다. 스스로 이름지어 「우산육영회」라하고 문교부에 재단법인설립신청서를 내게하고 자기는 용문산기도원으로 들어갔다.
청운각경영도 강수억씨이름으로 넘어갔다. 강씨는 조여인이 평소 귀히 여기다 양자로 입적시키려던 친동생 성임씨의 아들.
지난6일 용문산에서 위독전보가 날아들었을때는 우산육영재단의 수속이 거의끝날무렵이었다.
재단이사진은 모두 7명으로 내정, 영락교회의 한경직목사, 전장관 박모씨, 양자 강수억씨등-.
그의 임종을 지켜본 가족은 『돈을 벌때 으례 떳떳하지못한 수단도 사용되는 법이니 돈자랑은 아예말라』면서 『문제는 번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고 누누이 당부하더라는것.
3년동안 암투병에 현금은 거의 다쓰고 청운각생긴이래 최악의 해였다는 지난해부터 5천평의 대지에 3동의 부속건물로된 건물을 팔아서라도 『불우한 학생들에게 도움줄수 있도록하는것이 소원』이라고 말해왔다고.
유족들은 청운각을 계속운영, 이익금을 적립하여 고인의 유지는 꼭 받들겠다고했다.
10일상오 장지인 안양으로가는 장례행렬엔 20명의 여종업원과 15명의 남자종업원들이 뒤따랐다.
『무식할지언정 배운사람보다 더 일처리를 잘한 사람』으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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