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같은 광부 중에서도 한국인들은 조건이 나쁜 곳에 배치되었다. …그들 중에는 견디다 못해 작업시간 도중에 굴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 광부들은 검사장으로부터 끌려 간다. 『양반나으리 배가 아파요.』 한국인은 제재를 모면하려고 울부짓는다.
그러나 노무계원은 바닥에 엎드려 놓고 짧은 고무「벨트」로 내려친다. 광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튼다. 노무계원들이 「새우의 재주넘기」라고 부르는 이것을 나는 거의 매일같이 목격했다.
내짝에 장군이라는 한국인 소년이 있었는데 그 재주넘기를 볼 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개새끼들』하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위로할 바를 몰라 나는 그저 『대학을 나와 출세하기만 하면 한국인도 멸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나라를 세우면 되지 않겠는가』고 좀 빗나간 말을 하기도 했다. 종전 20주년을 맞아 일본인작가 정상광청은 이렇게 회고한 것이 있다.
한국인의 독립은 이루어지고, 일본의 대학출신도 많아졌다. 그러나 일본인의 「선인」에 대한 멸시와 구박은 여전한 것 같다. 최근에 일본청수시에서 「라이플」쏘아 두 깡패를 죽이고 어느 우천여관에서 10여명을 인질로 하여 3백여 일본경찰을 골탕먹여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강안홍(한국명=김희로)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공개한 수기에도 13세때부터 경찰에서 욕을 보아왔고. 지난해 가을에 『네 놈들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변변한 짓 하나 한 게 없다』고 어느 일인 형사가 욕한 것이 가슴에 사무쳤다고 적혀 있다.
그가 사람을 죽인 이상에는 마땅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그를 단순히 「라이플마」니 「얼치기영웅」이니 라고 만 보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아픈 마음이다. 「주소부정·무직자·김희로」이외 에도 일본에는 수많은 한국인이 있을 것이며, 그들은 일본인의 선의와 우정과 이해를 어느 때 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