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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대신 쉼터 … 그린벨트 활용 발상을 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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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묶기도 어렵고 풀기도 어려운 ‘초록색 띠’가 있다. 주요 대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다.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주변을 처음 그린벨트로 묶은 지 43년째를 맞았다. 이후 그린벨트는 역대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정책 현안이 됐다. 하지만 좀처럼 정책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난제 중 난제로 꼽혀 왔다. 섣불리 풀어버리면 ‘누더기 벨트’라고 욕을 먹고, 그냥 놔두자니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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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정부가 그린벨트에 대한 첫 작품을 내놨다. 국토교통부가 8일 발표한 환경·생태·문화 체험공간 조성 계획이다. 그린벨트를 더 풀지는 않되 관광·레저용으로 이용가치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사업에는 박근혜정부 5년간 1000억원이 들어간다. 그린벨트 안에서 도시민들이 즐겨 찾을 만한 산길이나 숲길을 찾아내 새롭게 단장하고, 경관이 좋은 곳에는 공원과 편의시설 등을 꾸미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올해는 걷는 길 21곳(총길이 116.3㎞) 조성을 포함해 48개 사업에 254억원을 쓴다.

 김정희 국토부 녹색도시과장은 “앞으로 그린벨트에 대해선 환경도 살리고 여가도 즐기면서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5일제 실시 등으로 시대가 변한 만큼 그린벨트에 대한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며 “과거처럼 개발을 제한하면서 방치하는 소극적 관리를 넘어 도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생태체험·여가·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에게 그린벨트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남겨준 ‘소중한 유산’이다. 그만큼 애정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71년부터 77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전국 14개 권역에 총면적 5397㎢를 그린벨트로 묶었다. 전 국토의 5.4%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당시 그린벨트는 최고의 ‘성역’이었다.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풀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까지도 그린벨트의 경계선은 엄격히 지켜졌다.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심한 곳에 대해 부분적으로 개발제한의 규제를 풀어주긴 했지만, 단 한 뼘이라도 그린벨트 자체를 푼 경우는 없었다. 그린벨트 해제의 시동은 김대중 대통령이 걸었다. 그는 97년 대선 “보존가치가 없는 그린벨트는 풀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취임 후엔 그린벨트 제도개선협의회를 통해 구체적인 해제 기준을 마련하고 특별법까지 제정했다. 2000년 시화·창원산업단지 주변부터 그린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특히 7개 지방 중소도시권의 그린벨트(1103㎢)는 완전히 풀어버렸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그린벨트에 관한 한 닮은 점이 많다. 수도권에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해지니 그린벨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여론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서민용 주택을 짓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노무현 정부에선 국민임대주택, 이명박 정부에선 보금자리주택으로 이름만 달랐다.

 박근혜 정부의 고민은 과거 정부에서 그린벨트를 풀어도 너무 많이 풀었다는 점이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풀린 그린벨트는 1510㎢에 달한다. 남은 그린벨트는 3887㎢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미개발지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그린벨트를 풀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이 중단된 곳이 현 정부의 큰 숙제다.

대표적인 지역이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17㎢). 국토부는 광명·시흥지구를 비롯해 보금자리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다. 조만간 보금자리지구에서 주택공급 계획을 대폭 축소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을 전망이다.

  세종=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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