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째 이발소, 여긴 사랑방이고 파출소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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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범일5동 매축지 마을에서 47년째 운영중인 경마이발관에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로 유만갑 사장이 손님 머리를 깎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항 제5부두 맞은편에 있는 동구 범일5동 매축지(埋築地) 마을. 일제 때 부산항을 확장하면서 우묵한 곳을 메워서 생긴 마을이다. 해방 후 마을이 형성된 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990년 재개발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지금은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보수나 건축이 제한되어 일제 때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심 속 오지다.

 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경마이발관’. 면적 15㎡의 작은 이발관은 주인 유만갑(67)씨가 47년째 운영하고 있다. 한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다 보니 머리만 깎는 곳이 아니라 마을 사회복지관이고 경비실, 치안센터 역할까지 하고 있다. 집 위치를 찾는 사람, 수령인이 집에 없어 물건을 맡기려는 택배기사, 100원짜리 고스톱판을 벌이는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이 이발관을 자주 찾는다. 마을 주민들은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이발소에 신고한다. 몇 년 전 이 마을에서 사회복지사를 사칭해 어르신에게 안마를 해준 뒤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이고 금반지를 빼가는 사건이 발생 한 후부터다.

 이발관 주인 유씨는 경남 의령에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동구 초량동으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어릴 때 나무에서 떨어져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쳐 군대를 안 가게 된 그는 15살 때부터 이발소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부두 근처라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많았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의 모습이 좋아 보여 배웠어요.”

 20살 때 ‘경마이발관’을 열었다. 1998년까지는 5~6명의 이발사를 둘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발관 이름 ‘경마’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남자들의 머리기름 ‘포마드’ 상표에서 따왔다. 1990년대 생기기 시작한 퇴폐 이발소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손님들의 발길을 미용실로 돌리게 했다. 한번 간 손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갈수록 손님이 줄어 지금은 하루 3~5명 정도다.

 그래도 단골손님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찾고 있다.

 40년 단골인 배구택(70·동구 범일5동)씨는 “경로당은 할머니들만 있어 불편해. 이곳은 남자 친구가 많고 마음이 편해서 놀이터처럼 자주 온다”고 말했다. 자주 오던 손님이 한동안 안 보이면 나중에 숨진 것을 알 정도로 나이 많은 손님이 많다.

 이발소 한구석에 할아버지가 어린이의 머리를 깎아주는 연필 스케치 그림이 걸려 있다. 유 사장은 “나도 나이 들어서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걸어둔 그림”이라고 말했다. 이발 가격은 5500원. 1999년 걸어둔 가격표다. 이발하고 샴푸, 면도, 드라이까지 해준다.

 유 사장은 “그동안 이발관을 하면서 아들 삼형제 대학 보내고 모두 결혼시켰다. 자식들이 그만두라고 하지만 문을 닫으면 지금까지 해오던 역할을 대신할 곳이 없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문을 열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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