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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 (76) - 개리 셰필드 (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년간 셰필드는 메이저리그의 큰 뉴스메이커 중 하나였다. 연봉문제에 따른 셰필드와 케빈 말론 전 LA 다저스 단장과의 불화, 은퇴 불사 및 동료 비난 파문 등. 그런 셰필드의 문제는 구단과 언론의 비난은 물론 심지어 다저스 홈팬들마저도 지난 시즌 개막전에서 그에게 야유를 퍼붓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스타였고, 스타는 실력으로 말하는 법이었다. 지난 시즌 밀워키와의 개막 홈경기에서의 양팀의 유일한 득점이자 결승 타점이었던 셰필드의 홈런 한방은 왜 그가 그토록 팀 간판타자에 대한 예우를 부르짖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한방의 홈런을 시작으로 그는 2001시즌동안 말많던 다저스에서 타율 .311, 36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최초로 3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는 다저스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강한 성격은 신임 에반스 단장이 몰래 자신을 오클랜드로 트레이드하려하는 시도를 용납치 못하고 다시한번 폭발하였다.

결국 외야수 브라이언 조던(34), 좌완투수 오달리스 페레즈(23), 마이너리그 투수 앤디 브라운과 트레이드 되면서 화려했지만 결코 순탄치 않았던 다저스 생활을 마치고 애틀랜타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게리 셰필드는 1968년 11월 18일에 플로리다 템파베이에서 태어났다. "닥터K" 드와이트 구든의 조카이기도 한 셰필드는 어린시절 7년동안 삼촌인 구든의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유년시절부터 타고난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셰필드는 고등학교 때에는 "전미 최고야구선수(the top baseball player in the Nation)"에 뽑히기도 하였고, 3학년 때에는 주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8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밀워키에 의해 1라운드(전체 6번)로 지명되면서 프로에 입문하게 되었다. 구든의 조카라는 사실은 그를 더욱 주목받게 하기에 충분했다.

짧은 마이너리그 3년 동안 탁월한 타점능력으로 그가 속한 리그마다 타점왕을 휩쓸었던 셰필드는 1988년 9월 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데뷔를 하면서 빅리그 무대를 밟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시애틀의 마크 랭스턴으로부터 2점 홈런을 뽑아내며 메이저리그 첫 안타 겸 홈런, 타점을 기록하게 된다.

그 해 1988년 스포팅뉴스 선정 '최고의 마이너리거"로 선정되기도 했던 셰필드는 이듬해부터 밀워키의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으며 타고난 재능을 본격적으로 푸는 듯 했다. 그러나 어깨와 손목부위의 부상은 그의 만개를 시셈하는 것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재능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샌디에고 파드리스로 이적하고서 부터였다.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타율 .330으로 최연소 타격왕(당시 23세)에 오르는 한편 홈런(33, 리그 3위) 과 타점(100, 리그 5위) 등 "트리플 트라운"에 근접하는 활약으로 NL 올해의 재기상(Comeback Player of the Year)과 3루수 부문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다. 바야흐로 그의 시대가 열리는 듯 보였다.

1993년 6월 24일에 2:3 트레이드로 플로리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된 셰필드는 그 해 올스타 스타팅라인업에 선발되면서 최초로 올스타 선발 출장하는 플로리다 말린스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부상은 94년 왼쪽어깨 부상과 95년 왼손가락 부상은 또다시 셰필드의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다. 타격감은 살아있었지만 각각 87경기(94년)와 63경기(95년)밖에 출장하지 못하는 등 부상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이듬해인 96년 그를 괴롭혔던 부상들을 모두 떨쳐버린 셰필드는 이때부터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4월에만 11개의 홈런을 치며 월 최다홈런 타이기록을 세우는 등 그 해 161전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314, 42홈런, 163안타, 120타점, 118득점 등 92년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특히 홈런, 타점, 득점 등 공격 거의 전부문에서 프랜차이즈 신기록을 세웠다. 그 대부분의 기록들은 오늘날까지도 말린스 구단기록으로 남아있다.

96년이 개인적으로 최고 영예의 해였다면 97년은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반지의 주인공이 된 해였다. 개인으로는 비록 정규시즌에서 2할 5푼대 타율에 머물렀지만 포스트시즌 16경기에서 타율 .320(50타수 16안타), 3홈런, 7타점에 무려 20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신생팀 말린스가 창단 5년 만에 챔피언으로 등극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월드시리즈 MVP는 쿠바국가대표 출신의 신예 리반 에르난데즈(27, 현 SF 자이언츠)에게 양보해야 했지만 그는 기록되지 않는 또다른 MVP였다.

1998년 5월 15일. 아직 우승의 기쁨에 대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프로생활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해야만 했다. 바로 셰필드를 비롯 마이크 피아자(33,현 뉴욕 메츠)와 찰스 존슨(30,현 플로리다 말린스) 등 7명이 포함된 대형트레이드를 통해 당시 박찬호가 있던 LA다저스로 오게 된 것.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된 셰필드는 완전히 타격에 물이 오른 듯이 보였다. 다저스에서 4년 연속 3할 타율은 물론 99년부터 지난 해까지는 3년 연속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타자로서 손색이 없는 뛰어나면서도 꾸준한 성적을 올렸다.

2000년에 그가 세운 43개의 홈런은 1956년 듀크 스나이더가 세운 다저스 프랜차이즈 기록과 타이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박찬호가 마우드에 서면 어김없이 홈런을 때려내어 "찬호 도우미"로서 잘 알려지면서 한국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석무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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