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킹 당하고도 무대응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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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해커그룹 어나니머스가 우리민족끼리 회원 1만5000여 명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이를 둘러싸고 공개된 회원 명단의 진위와 북한의 무대응 등 각종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회원 명단은 신뢰할 만한가=어나니머스가 우리민족끼리의 회원 명단 9001건을 1차로 공개한 건 지난 4일 오후 4시34분쯤이다. 공개한 지 20분 만에 일베 등에선 이 명단을 토대로 신상 털기가 시작됐다. 명단에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내몰리는 사례도 속출했다. 그러나 이 회원 명단의 신빙성에 의문을 나타내는 전문가가 적잖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우리민족끼리는 본인 인증 절차가 없는 매우 단순한 가입 시스템”이라며 “본인 정보를 그대로 적는 순진한 사람도 있겠지만 감추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 명단에 나온 정보가 실제 가입 당사자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우리민족끼리는 일반적인 국내 사이트와 달리 주민등록번호 입력 등 개인 인증 절차 없이도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본지 취재진이 7일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회원 가입 페이지에는 영문 아이디와 8글자 이상의 암호, 이름·생일·전화번호·e메일을 쓰는 칸이 있었다. 허위로 기재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는 없었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회원 명단을 보면 이름이 ‘크크큭’ ‘hhhh’ ‘빨갱이거지XX들아’, e메일 계정이 ‘@하하’ ‘@palgeng(빨갱).com’ 등 장난식으로 등록한 이들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당시 e메일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e메일을 도용한 경우도 있다.

 ◆북한은 왜 침묵하나=북한이 이번 사건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점도 의문이다. 우리민족끼리 명단이 공개된 이후 북한 당국은 한 줄의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어나니머스 측은 “우리는 이미 지속적으로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 사이트를 공격해 왔고 북한 측은 이에 체념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논평을 내는 것은 공격받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호열(북한학) 고려대 교수는 “북한은 이제까지 인터넷 등 사이버 강국이라 주장해 왔다”며 “내부적으로 미칠 파장을 고려해 언급을 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나니머스, 왜 실체를 드러냈나=은밀하게 활동하는 해커 그룹이 실체를 드러낸 점도 이례적이다. 어나니머스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이번 공격의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일부 해커는 언론 인터뷰에도 응했다. 일부 네티즌이 “정의로운 일을 한다”며 의적으로 추앙하는 등 팬덤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IT전문가 홍민표 에스이웍스 대표는 “어나니머스는 정치적 성향을 갖고 해킹을 하는 집단이라 무언가를 달성하면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북한 체제 반대 메시지와 사이트 공격 성공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언론에 자신들을 노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하는 해커인 만큼 정의의 사도로 과대 포장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나니머스의 해킹 사례 중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나 카드 회사 등 해킹 실력 과시를 위한 공격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영국 법원은 어나니머스 해커 4명이 카드회사를 공격한 데 대해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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