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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36) 치산녹화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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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남과 경북 경계에 있는 동대본산 비탈에 콘크리트 수로를 만드는 특수사방 공법을 적용했다. 공사 1년여 후 민둥산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왼쪽은 공사 전인 1972년, 오른쪽은 공사 후인 73년 동대본산의 같은 지역 모습이다. [사진 고건 전 총리]

1960년대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아래로 일본의 울창한 숲이 보였다. 푸르다 못해 검었다. 숲은 같은 빛깔인 동해로 이어졌다. 하네다와 서울공항을 잇는 하늘길을 따라 내려다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한국의 산이 경남 울주군 농소면 (지금의 울산시)과 경북 월성군 외동면 (경주시)에 걸쳐 뻗어 있는 동대본산이었다. 지금이야 푸르지만 그때는 시뻘건 민둥산이었다. 검푸른 일본의 숲과 누렇다 못해 붉은 한국의 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자존심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67년 11월 11일 박 대통령은 “저 형편 없는 산을 사방공사(모래나 흙이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하는 공사)로 녹화하라”고 경상북도에 지시했다. 경상남도·경상북도와 산림청은 매년 봄에 사방사업을 했지만 장마가 닥치면 그때마다 산은 무너져내렸다. 박 대통령은 72년 9월 18일 수해가 난 현장을 찾았다가 산사태로 엉망이 된 동대본산을 목격했다. 김현옥 내무부 장관에게 “산비탈과 계곡을 복구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새마을 부서에서 하라 그래 봐.”

 내가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이었다. 72년 9월 말부터 경주시내 여관에 숙소를 잡고 전석홍 내무부 도시개발관과 함께 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듣던 대로 동대본산은 악산 중 악산이었다. 토질이 문제였다. 평소엔 바위처럼 딱딱하지만 여름철 비만 오면 흙이 곤죽처럼 흘러내렸다.

 ‘매년 실패를 거듭한 방법이 아니고 다른 공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여관으로 전화가 왔다. 부산의 한 전문대 토목공학과의 아무개 교수라고 했다.

 “지역신문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동대본산 녹화사업을 맡고 계시다고….”

 “네. 그렇습니다만.”

 “그런 특수 토질에선 일반 산지사방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특수사방 공법을 써야 합니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바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묵고 있던 경주 여관으로 그 교수가 찾아왔다. 보자마자 물었다.

 “특수사방 공법이 뭔가요.”

 “ 뭐 타고 내려오셨습니까.”

 “새마을호 타고 왔는데요.”

 “철도 타고 내려올 때 터널도 지났을 텐데, 터널 입구 양 옆에 보면 콘크리트 옹벽도 있고 석축도 있고 사이사이 나무를 심어놨죠? 수로도 있고. 그게 특수사방 공법입니다.”

 “아. 그래요. 동대본산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장마가 오더라도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물길을 유도하는 수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안에 가느다란 철근을 넣더라도 콘크리트 수로를 만들어야 산비탈이 무너져내리지 않습니다.”

 ‘옳다. 이거다’ 싶었다. 그 자리에서 동대본산 사방공사 구역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의 설계를 부탁했다. “현장을 보시고 직접 사방공사 설계 스케치를 해주십시오. 설계한 모델을 가지고 다른 지역도 그에 준해 설계하겠습니다.”

 콘크리트 수로를 설치하는 일명 ‘심줄 박기’ 공법을 현장에 적용했다. 그리고 경상남도 부지사와 경상북도 부지사를 현지에 불렀다. “특별교부세 예산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양 도가 분담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사를 추진했으면 합니다.”

 동대본산이 도계(도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는 특성을 이용해 2개 도의 경쟁을 붙인 거다. 72년 11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전 연락도 없이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 내려 현장을 찾기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년반 만에 동대본산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실패를 거듭했던 동대본산 녹화사업이 드디어 결실을 봤다.

 부산의 그 교수 덕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 교수의 이름과 대학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직접 만나 고마움을 다시 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은 80대 중반의 연세일 것이다. 혹시 이 글을 보고 본인이나 그분을 아는 사람의 연락이 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인물] 전석홍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 79세.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며 공직에 들어섰다. 71~73년 내무부 도시개발관(이후 도시지도과장)으로 고건 당시 새마을담당관과 함께 일했다. 이후 내무부 새마을담당관, 광주시장, 내무부 차관보, 전라남도 도지사를 지냈다. 국가보훈처장과 15대 국회의원으로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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