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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창의 리더십 포럼 ② 배철현 ‘세계 종교와 문명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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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동아시아의 소프트파워를 찾으려는 ‘아시아창의리더십포럼’ 두 번째 강연은 세계적 보편성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됐다. 문명과 종교라는 공통 분모 속에 동아시아와 한국의 위치를 모색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 오디토리움을 채운 200여 청중을 사로잡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의 ‘세계 종교와 문명에 공통된 DNA: 자비’ 강연과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세계 문명의 만남’ 강연을 만나본다. 이번 행사는 서울대미술관·한샘·중앙일보가 함께한다.

하현옥 기자

프랑스 니스의 샤갈 성서박물관에 소장된 마르크 샤갈의 ‘인간 창조’(1956~58)다. 배철현 교수는 “인간은 신이 각별한 미션(임무)을 주고 하늘에서 데리고 온 존재인만큼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게 최고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한계에 달한 서구문명을 타개할 아시아적 상상력의 출발도 이타적 유전자에서 찾았다.

많은 문화권은 사람(人)에 관심이 있다. 동아시아의 인간관에서 주목할 점은 인간(人間), 즉 사람을 관계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옳으냐 아니냐는 다른 사람의 평가로 결정되는 셈이다. 자기 주장에 빠져 나와 다르면 틀린다고 하지만 다양성은 창의력의 원조다. 동양의 가능성은 조화와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데 있다.

 공부를 하는 것은 쓰지 않는 정신 근육을 훈련하는 일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신적으로 기형적 인간이 될까라는 우려에 아카데미를 만들어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다른 분야로 정신적인 요가를 많이 할수록 그 사람은 상대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무아(無我)의 상태에 진입하기 위해 공부한다. 내가 가진 생각과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인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것은 목적을 잃은 것이다.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는 이유는 유명한 구절을 아는 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럽 문명의 중심인 셰익스피어를 통해 유럽 사람의 희로애락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기원전 호메로스와 공자부터 예수와 마호메트를 거쳐 스티브 잡스와 버락 오바마까지 인류 역사의 혁신(革新)을 이끈 이들은 이기적인 상태에서 이타적인 상태로 자기 혁신을 이뤄낸 사람이다. 혁신의 ‘혁(革)’은 가죽을 뜻하는데 가죽을 만드는 과정은 이타에 이르는 것과 같다. 가죽을 벗겨내고 털과 기름기를 제거하는 무두질의 과정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포기할 때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가죽을 유연하게 하는 과정도 필요한데 사람도 유연해져야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혁신이다.

 이런 혁신을 이뤄낸 사람들에게는 공통의 DNA가 있는데 바로 연민(compassion)이다. 이는 상대방이 아플 때 내가 아플 수 있는 능력으로,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이처럼 남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 기독교에서는 사랑이고 불교에서는 자비라 할 수 있다.

배철현 교수

 서양문명의 근간인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쓴 호메로스의 작품에는 연민의 코드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적장인 아킬레우스와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아킬레우스는 애인인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끌고 다니지만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며 애원하는 프리아모스의 모습에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시신을 내주며 프리아모스를 끌어안고 운다. 상대방을 위해 울 수 있는 문화, 이런 바탕에서 르네상스 미술과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2004년 행한 연설은 연민의 감정을 극대화한 명연설이다. 동생인 아벨을 죽인 뒤 동생의 행방을 묻는 하느님에게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나는 형제와 자매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미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 믿는다”고 강조하며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도록 하고 라마단 기간에 금식하게 한 것도 연민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무슬림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머리를 숙이는 것인데,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며 마음속의 에고(ego)를 꺾으라는 것이다. 라마단 기간의 금식은 인간의 최대 욕망인 식욕과 성욕을 줄여 가난하고 못 먹는 사람을 생각해 연민을 가지라는 가르침이 담긴 것이다.

 남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우고 자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갖고, 고독(solitude)을 즐겨야 한다. 하루에 10분만 자기에 집중하면 일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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