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런던 중재법원 "고합 120억·쌍용 31억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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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합과 쌍용건설이 한솔엠닷컴 주식 매각과 관련,주식을 팔 때는 반드시 다른 대주주에게 먼저 매도 청약을 해야 한다는 계약을 지키지 않아 거액을 물어주게 됐다.

런던중재법원(LCIA)은 27일 한솔엠닷컴(옛 한솔PCS로 현재 KTF로 합병) 우리사주조합이 고합과 쌍용건설을 상대로 낸 중재신청에서 "고합은 1백20억원을, 쌍용건설은 31억원을 우리사주조합에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솔엠닷컴 주식만 해도 이런 분쟁이 12건에 이르는 등 비슷한 유형의 분쟁이 국내에서 5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중재결정은 법원의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고합과 쌍용건설은 곧 배상해야 한다.

◇ 사건의 전말=한솔PCS는 1998년 벨 캐나다사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대주주들과 '주주간 계약서'를 체결했다. 이때 한솔 주식을 갖고 있던 고합과 쌍용건설도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계약서에는 '일차청약 거절권(right of first refusal)조항이 들어 있었다. 즉 기존 주주가 보유 주식을 팔고자 할 때는 반드시 다른 기존 대주주들에게 먼저 매도 청약을 하고 아무도 승낙하지 않을 때에만 제3자에게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고합과 쌍용건설은 99년 5월 보유주식 각 2백10만주와 1백30만주를 팔겠다고 했다. 그 중 1백50만주(고합)와 38만주(쌍용)가 한솔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됐고, 우리사주조합은 사겠다고 승낙했다. 그러나 이후 주식 값이 뛰자 고합 등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고합측은 "우리사주조합은 조합이 아니라 조합원이 주주이므로 일차 청약거절권을 가진 주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당시 1만2천원에 팔기로 했던 주가는 지난해 1월 한솔PCS가 코스닥에 등록된 뒤 6만5천원까지 올랐다.

◇ 결정의 의미=세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일차청약 거절권'에 대한 첫번째 국제중재 결정이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은 외자를 유치하면서 주주간 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주가가 급격히 변동하자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세종로펌 김범수 변호사는 "고합 등이 주식을 팔기로 계약했다가 일방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이번 결정은 비슷한 분쟁 해결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는 중재부가 비상장주식의 시가를 산정하면서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가격을 반영한 게 아니라 실제 당사자들의 거래가격을 찾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생길 비상장주식을 둘러싼 분쟁에서 시가산정 방법을 제시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우리사주조합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국내 판례 중에서 사주조합을 소송이나 중재의 당사자로 인정한 예가 거의 없었다.

태평양로펌 강종구 변호사는 "우리사주조합의 주주는 소량의 주식을 가진 개인이기 때문에 중재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가 이번 분쟁의 쟁점이었다"면서 "이번 결정으로 앞으로 우리사주조합도 소송 및 중재 등을 자신의 이름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런던중재법원(www.lcia-arbitration.com)=계약 당사자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중재인 선정.송달.중재 결정 검토 등을 해주는 국제기관이다. 대개 국제법률.중재 전문가 3인으로 중재부를 구성한다.

법원의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과가 있지만 강제 집행력은 없다. 이긴 쪽은 집행지 관할 법원에 집행 판결 청구소송을 할 수 있으며, 진 쪽은 중재절차의 하자 등을 이유로 중재 판정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그러나 대부분 중재 결정에 따른다.

김동섭.표재용 기자 d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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