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보전갈등 새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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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 변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 가로 10m, 높이 3m의 암벽에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와 호랑이·사슴·멧돼지·곰 등 다양한 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신석기~청동기시대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바위그림은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어 1995년 국보 제285호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도 등재돼 있다.

 이 바위그림은 1년에 절반 정도 물에 잠긴다. 대곡천 남쪽에 있는 사연댐 수위가 높아지면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겨울 등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는 물속에 잠기면서 침식작용으로 바위그림이 흐려지는 등 많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 사연댐이 1965년 건설돼 침식작용이 48년째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암각화를 보전하기 위한 침수방지 방법을 놓고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댐 수위를 낮추면 식수 공급에 차질을 빚을 거라고 보고 있는 울산시가 최근 한국수자원학회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문화재청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수자원학회는 지난 13일 “울산시의 제방 건설안이 문화재청의 댐 수위 조절안보다 효과적”이라는 연구보고서를 울산시에 냈다. “문화재청의 요구대로 댐 수위를 60m에서 52m로 낮추면 암각화 앞 유속이 약 10배 빨라지고, 물의 방향도 암각화 쪽으로 쏠려 훼손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대신 “암각화에서 80m 떨어진 곳에 높이 10~15m, 길이 450m의 둑을 쌓으면 침수를 막을 수 있다”며 울산시 손을 들어줬다. 수자원학회는 울산시 의뢰로 지난해 6월부터 사연댐과 반구대 일대 축소모형(1:50)을 만들어 이 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암각화 주변의 자연환경 훼손이 불가피한 방법이고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에 악영향을 준다”며 반박했다. 권석주 문화재청 유형문화재 과장은 17일 “제방을 쌓으려면 15t 덤프트럭 5만~6만 대분 흙을 쏟아부어야 한다. 주변 자연환경 훼손은 불 보듯 뻔하다” 고 말했다. 그는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방법이 최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논란은 10년간 계속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사연댐 수위를 낮추라”, 울산시는 “식수원인 사연댐 수위를 낮추기 어려워 암각화 앞쪽으로 제방을 쌓자”는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갈등은 박근혜 정부 들어 더 깊어질 전망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유적보전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 변영섭(62·미술사학과) 교수가 16일 신임 문화재청장에 내정됐기 때문이다. 변 내정자는 “문화재와 주변 환경을 함께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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