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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 겨울나기 담은 '얼굴'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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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제 정석 아기 스님이 울었다/아직 속세의 때가 묻은 탓인지/엄마의 정이 그리운 것인지/자주 투정을 부리며 울었다//무학스님이 가장 괴로울 때는/동자 스님들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할 때다/속세의 정을 떼지 못하는 것은/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일텐데/이럴 때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다."

시인 이지엽씨와 정성욱씨가 2개월간 동자승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동심에서 바라본 아픔을 담은 '괴로움'이라는 제목의 시다. 이씨와 정씨는 동자승과 살을 부비며 살면서 지켜본 그들만의 천진난만한 세상과 동심, 절집 분위기를 '얼굴'(고요아침)이라는 책에 담았다. 평소 불교에 심취해 있는 두 시인은 쉬우면서도 읽는 맛이 나는 글솜씨로 불교의 세계까지 전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전남 장성군 서삼면 축암리 산골에 자리잡은 해인사라는 절에서 살면서 스님의 길을 걷고 있는 동자승 7명이다. 성철.대한.병기.정석.성근.석철.성진이 그들이다.

대개는 버려져 엄마.아빠가 없는 아이들이지만 여느 어린이들과 다름없이 웃고 울며 올 겨울을 나고 있다. 주지 무학스님이 아이들을 돌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지금은 11명으로 늘었지만 두 작가가 그곳에서 지내던 지난달에도 동자승은 7명뿐이었다.

사진작가 최옥수씨와 배홍배씨가 찍은 흑백 및 컬러 사진 1백여장 만으로도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동심이 손에 잡힐 듯하다. 눈망울은 맑은 샘물같고, 해맑은 표정은 꽃 같다. 백양사 서옹 스님과 한 자리에서 찍은 동자승의 행장은 제법 의젓하다.

찻길에서 3㎞를 더 올라가야 하는 해인사는 20평짜리 컨테이너를 두 개 붙인 오두막이다. 요사채가 없어 동자승은 무학스님과 함께 법당에서 잠을 청한다.

무학스님은 눈바람이 세찬데도 난방시설이 없어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늘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하지만 수행에는 동자승이라고 예외가 없다.

새벽 5시 종소리에 깨어날 때에는 따스한 이불을 차던지지 못해 꾸물대다가 무학스님의 불호령을 듣곤 하지만 새벽 예불에 빠지는 동자승은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무학 스님의 법문이 이어지면 자기 머리 만한 목탁을 두드리며 법문을 외우다가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조는 동자승이 나온다. 그럴 때면 무학스님과 동자승간에는 "너 졸면 안된다" "네, 알겠습니다". "너 임마, 왜 졸아!" "나 안 졸았습니다"는 꾸지람과 변명이 오간다.

이곳 동자승들이 연중 즐길 수 있는 놀이는 앞마당이나 뒷산 대나무 숲을 돌아다니며 연을 날리거나 고구마를 캐고 딸기를 따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이씨와 정씨는 그곳을 떠나 올 때 "장난감 좀 사 주세요, 로봇이요"라고 매달리던 동자승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드문드문 절을 찾는 아주머니들이 안아주면 동자승은 엄마의 품처럼 꼭 껴안긴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라고 물으면 "저, 엄마 없어요"라고 대답하면서도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힌다.

두 시인의 글은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속세의 정을 떼지 못하고/어찌 아이들을 스님으로 키울 것인가/동자승들 중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면/스님은 그 동자승을 밖에다 세워 두었다//속세의 엄마를 잊게 만드는 것은/오직 그것뿐이었다//그러나 어쩌랴/가슴이 이토록 미어지도록 아픈 것은."(시 '괴로움'의 후반부)

정명진 기자m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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