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여성 의원들이 열받은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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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호 31면

얼마 전 여럿이 밥을 먹는데 한 남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비밀주의는 사실 여자들의 일반적인 특징 아니야? 남자들은 떠벌리는 걸 좋아하는데, 여자들은 조심스럽잖아.”
“그런가요? 박근혜 개인 특성 같은데….”
슬프게도 반박할 만한 사례가 떠오르지 않았다. ‘공개적인’ 여성 리더는커녕 생각나는 여성 리더가 거의 없었다. 동석한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도 이젠 여성 특유의 리더십에 익숙해져야 할 거야”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비밀주의는 각종 인사 잡음과 인수위 불통 운영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거란 예측까지 나온다. 그게 여성의 특성 아니냐는 말은, 확대 해석하면 ‘비밀주의는 앞으로도 여성 리더들의 특성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까지 비약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가 되려 애쓰는 다른 여성들로선 억울할 법한 얘기다.

여성 리더십의 장점과 현재를 생각해볼 계기가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여성 국회의원 4명의 만남을 기획한 건 그래서였다. <6~7면 참조> 이들에게 취지를 설명하자 다들 반가워했다. “고맙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소속 정당이 다르다 보니 서로 초면인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여성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인가. 비밀주의가 특징인 것 같다는 시각도 있다”고 하자 다들 흥분했다. “절대 그렇지 않다”며 여성 리더십의 장점을 앞다퉈 제시했다. ^공개적인 절차에 따른 일처리 ^부패하지 않는 것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 등이다.

물론 동의가 안 될 수도 있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여성 판사들이 혈연·지연·학연 등에 덜 휘둘리고 양형 기준에 따라 판결하는 쪽이라는 게 정설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비공식적인 접근이 여성들에겐 덜 먹힌다는 인식이 많다.

그런데 이런 특징이 박근혜 당선인에게도 적용될지 생각하면 약간 부정적이다. 그의 정치생활에서 비밀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엔 부친의 제왕적 리더십과 아픈 과거사가 영향을 미쳤을 거다. 남성적 정치문화에서 조직을 장악하고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택한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다른 책임감도 느꼈으면 한다. 첫 여성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성 리더십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차 여성 리더가 많이 배출되려면 박 당선인의 성과가 중요하다.

한 여성 의원은 이런 기대도 드러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이번 설 연휴엔 손녀나 딸에게 ‘너도 뭐든 될 수 있다’고 덕담하는 어른이 많아질 것 같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태극 낭자군이 역대 올림픽에서 승전보를 올렸을 때 남녀 불문하고 흔히 하던 이야기가 있다. “요샌 여자들이 뭐든 잘해.” 이 말이 두고두고 우리 입에 오르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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