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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국민학교의 학구제 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27일 차관회의는 내년도부터 사립국민학교와 국·공립사범계학교의 부속국민학교에 대해서도 일반 공립국민학교와 같이 학구제를 적용하고 입학시험도 없애기로 한 교육법시행령개정안을 의결하고 곧 이를 각의에 붙이기로 하였다고 한다.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는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립국민교가 의무교육기관으로서의 그 본래의 사명을 저버리고, 날로 「귀족화」해가고 있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앞세우자면 우리는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가 과연 현명한 정책이며, 또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커다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날로 「귀족화」해 가고 있는 대다수 사립국민학교에 대한 식자일반의 비난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아무도 부인치 못한다. 한편에서 「콩나물교실」의 혼잡 속에서 2부제, 3부제수업이라는 변태적 교육활동을 강요당하고 있는 초라한 공립국민학교가 있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선 화려한 제복·제모와 「스쿨·버스」, 자가용차 등으로 상징되는 호화찬란한 사립국민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비단 교육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문제의 하나로 등장한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4년 전만 하더라도 불과 22개교 9천여명에 지나지 않았던 사립국민학교를 현재의 95개교 3만8천여명의 번창으로 이끈 현정부당국으로서는 그들의 특권화 내지 귀족화 경향을 고작 학구제의 실시만으로써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안이하고 본말을 전도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립국민학교가 비록 위기에 처한 의무교육의 정상화 방안의 한 방안으로서 적극 권장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불과수년 간에 현재와 같은 번창을 이루게 된 원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학교의 소위 일류중학 진학률이 사실상 괄목할 만큼 높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경제적 여유가 있고 특권층에 있는 인사들은 앞을 다투어 이와 같은 학교에 여자를 입학시키려고 애를 썼고, 이를 미끼로 하여 대다수 사립국민교의 경영자들은 온갖 구실을 붙여 사치스러운 학교경영과 치부에까지 손을 뻗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립국민교의 귀족화 경향을 막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이른바 학교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길밖에는 따로 없을 것이다. 근본문제의 해결이 없는 한, 학구제의 실시, 또는 입시의 금지조치가 종래와 같은 사학경영자의 학교경영방침을 변경시킬 원인이 되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립국민교를 에워싼 당국의 조령막개식 행정명령의 폐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교원봉급전액에 대한 국고보조까지 하여 권장했던 사립국민교에 대해서 정부는 그야말로 무원칙적인 조령막개를 일삼아 왔던 것이다. 당국이 사학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무교육정상화를 위한 적극 장려책을 택했던 것이라면, 그 일관성이 지속됐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립국민학교의 귀족화 폐단을 막기 위하여서는 오히려 보다 적극적인 장려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사립국민교의 수효를 더욱 늘리는 방도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일부 사립국민학교의 귀족화 폐단을 이유로 충실한 사학기관의 사기를 꺾어나 질적으로 저하된 일반의무교육기관의 빈곤상을 재분배하는 식의 문교행정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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