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의 거리문화 읽기] 미로에서 꿈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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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미로의 집합이다. 도시의 모든 길들은 서로 이어지고 얽혀 있지만 그 길을 모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 같은 거대 도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도시 속에 또 하나의 도시이자 쇼핑몰과 오락 시설이 몰려 있는 코엑스(COEX.사진) 나 센트럴시티는 도시가 미로임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곳이다.

무엇보다 도시가 미로임을 실감케 하는 것은 그런 지하 도시의 주차장이라는 이들도 있다. 주차를 해놓고 별 생각 없이 나갔다가 일을 본 다음 주차한 곳을 찾지 못해 한 시간 이상 헤맸다는 것이다.

나갔던 길로 돌아오면 될 것 같은데 방향을 잃고 같은 곳을 빙빙 도는 링반데룽 현상을 겪었다. 헤매고 헤맨 끝에 결국 차를 찾기는 했으나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들 했다.

운전면허도 차도 없는 나는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도 지하도시에 들어서면 방향 감각에 혼란이 생긴다. 거리 감각도 없어진다. 많이 걷지 않았는데도 다리가 뻐근해지고 의자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다.

바로 그 COEX 지하의 멀티플렉스 극장 앞에서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노랑.빨강.파랑의 네온 조명이 매끄러운 바닥과 천장에 되비치는 인위적인 공간은 그 자체로 환상이다.마치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근본적으로 환상이듯이.

때문에 그 환상 속에 들어선 사람들도 역시 실재감이 사라진다.실재감이 사라져 환영(幻影) 이 된 사람들이, 조명과 인테리어와 그 모든 것들이 철저히 소비공간임을 말해주는 곳에서, 역시 환영인 상품을 소비한다. 이곳에 캐릭터 상품 가게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걷고 또 걸어 그 환영에서 빠져 나온다. 하지만 환영은 밖에서도 계속된다.

환영과 현실 사이의 완충을 위해서라는 듯 바깥 풍경 역시 지하만큼은 아니지만 인위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차적인 야외 의자라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인공 바위들이 있고 무역센터 빌딩은 꼭대기만 보인다. 심지어 어느 때는 하늘조차 인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도시는 그 자체가 환상인 것이다.

환상이자 동시에 미로인 도시에서 우리는 도시의 길들을 모두 걸어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즉 거대 도시의 공간은 체험이 아니라 추상화된 정보로 지각된다.

모든 것을 기호로 축약시켜 만든 지도에 의해서 겨우. 그러므로 도시에서의 삶이란 일종의 꿈이고 우리는 어쩌면 모두 몽유병 환자인지 모른다. 어떻게든 한몫 잡아야 한다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미로 속을 끝없이 헤매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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