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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냄새 나는 한국 록, 이제 맘껏 불러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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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5년차 일본인 록밴드인 곱창전골이 4일 홍익대 앞 ‘스트레인지 프루트’에서 생애 첫 쇼케이스를 가졌다. 사진 왼쪽부터 아카이 고지로(베이스), 이토 고키(드럼), 사토 유키에. [사진 샐러드]

4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스트레인지 프루트’에선 땀냄새 그득한 살풀이가 펼쳐졌다. 3집 발표를 앞두고 있는 일본인 록밴드 ‘곱창전골’의 쇼케이스였다. 1999년 데뷔한 15년차 밴드라지만, 쇼케이스는 처음이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데뷔했을 때도 기자회견 한 적 없고, 쇼케이스도 한 적 없고 으하하하. 초심으로!”

 관객 40여 명 앞에 선 리더 사토 유키에(50)는 벽면에 붙여진 ‘곱창전골 1st 쇼케이스’ 플래카드에 감격했다. 99㎡(약 30평) 남짓한 지하공간의 3분의 2는 관중석, 나머지는 무대가 됐다. 이 공간을 그는 두 시간 내내 휘젓고 다녔다. 기타를 물어뜯고, 천장에 걸린 와인잔으로 기타줄을 튕기는 아방가르드 음악을 슬쩍 보여주기도 했다.

 곱창전골은 사랑으로 치자면, 지독한 짝사랑을 해왔다. 그 마음 알아주지 않는데도 15년째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한국음악이 좋아서 우리말로 노래를 불러왔다. 그들은 99년 첫 앨범 ‘안녕하시므니까’를 냈다. 2집 앨범 ‘나와 함께 춤을 추자’는 12년 뒤 나왔다. 3집은 다음 달 중순께 나온다. 앨범 석 장을 내는 데 15년이 걸렸다. 국내 음반사와 정식 계약하고 활동한 1집 때를 제외하고, 예술흥행비자(E-6)를 받지 못해 정상적인 공연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곱창전골은 최근 다문화 극단 ‘샐러드’와 전속계약을 맺고, 문화관광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 E-6 비자를 취득했다. 이날 무대는 곱창전골의 활동 재개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그간 쌓인 설움을 씻어내는 흥겨운 굿판이었다.

 사토는 95년 한국에 놀러 왔다가, 신중현·산울림·들국화의 노래를 듣고 한국음악에 빠져버렸다. “이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하고선,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 첫 앨범은 옛 한국록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가득 채웠다.

 애초에 그룹의 이름은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이었다.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던 시절, 한국 정부는 그룹명에서 일본인 이름을 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곱창전골이 됐다. 1집 활동 후부턴 6개월짜리 E-6 비자가 끝나, 관광비자로 한국을 오갔다. 연예인 비자라 불리는 E-6 비자는 취득조건이 까다로웠다. 소속사 소속 그룹이 아닌, 외국인 인디밴드가 따기 힘들었다. 헌데 이 비자가 없으면 유료공연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곱창전골은 무료 공연만 해왔다. 현재 한국에서 사는 사토 외에 일본에서 살고 있는 다른 두 멤버는 현지에서 4~10개에 달하는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데서 돈 벌어 한국에서 돈 쓰고 있다”는 사토의 말처럼 곱창밴드는 지독하게 이름을 유지해 나갔다. 2005년 작은 클럽에서 입장료 5000~1만원을 받고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사토가 강제추방 당했어도, 밴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후 한국 여자와 결혼해 영주권을 얻었다.

 “일본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옛날 노래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은 ‘신중현’하면 아는 사람이 많잖아요. 한국은 노래 파워가 있는 나라에요. 옛날 한국 록음악은 가사와 멜로디가 잘 어우러져, 소리소리 사이에서 마늘과 김치 냄새 나는 노래고요.”(사토)

 곱창전골의 2집은 사토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담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한국노래 졸업 논문 같은 앨범이다. 3집 ‘그날은 올거야’에는 반전·평화 메시지를 담을 계획이다. 강렬한 기타음과 군더더기 없는 가사가 어우러지는 한국 록 스타일은 그대로다. 사토는 “우리를 계기로 한국정부가 E-6 비자 절차를 좀 완화해, 다양한 외국인 뮤지션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곱창전골은 3월 1일 홍대 상상마당 라이블홀에서 3집 발매 기념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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