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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부 그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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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1면

춘설은 꽃보다 오히려 다감하다. 부드러운 털 깃처럼 따스한 눈발, 흰 설경 속에서도 우리는 봄을 본다.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잔치,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추억-. 춘설은 땅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서 녹는다.
애들은 봄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든다. 긴 겨울밤과 황량한 들판에 작별을 고하는 기념비 같다.
『아! 이제는 다시 눈사람을 만들 수는 없는 거야. 봄이 오고 있는 거다. 춘 겨울 바람은 기침과 감기를 들게 했었지. 그러나 얼어붙은 강물은 즐거웠어. 그리고 겨울철의 방학과 썰매와 눈들은…』 애들은 봄눈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겨우내 매연으로 그을린 「빌딩」의 창변에는 얼굴들이 보인다. 그들은 지금 내리는 춘설 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호동그런 눈을 뜨고 먼데를, 아주 먼데를 쳐다보는 시선이 눈발 속에 얽혀있다.
『또 하나의 겨울은 간다. 대지는 초록빛으로 변하고 잠자던 가로수는 깨어날 거야. 봄이 오는 것이지. 우리들의 젊음도 다시 하품을 하고 저 거리로 나가는 거야. 겨울은 우울했지만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어. 죽음과 긴장 속에서 뜨거운 체온을, 그리고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배운 거야. 이것이 그 마지막 눈인 거야…』 「오피스걸」과 가난한 「샐러리맨」들은 창 너머로 춘설의 독백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비장미를 갖고 있다. 미운 사람도 헤어질 때의 악수는 따스하다. 계절은, 그리고 겨울은 늘 그렇게 손짓을 하며 우리들 곁을 떠난다.
춘설은 꽃보다 오히려 다감하다.
부드러운 털 깃처럼 따스한 눈발, 흰 설경 속에서도 우리는 봄을 본다.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잔치, 그것은 겨울의 마지막 추억-. 춘설은 땅이 아니라, 나무들 가지에서 그대로 꽃이 된다. 매화처럼 꽃으로 화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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