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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를 위한 최상의 사용설명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중앙일보

입력

일본 도쿄 분쿄구에 가면 ‘네코비루’(고양이 빌딩)라고 하는 희한한 건물이 있다. 무슨 주차빌딩 같기도 한 이 검은색 건물의 외벽에는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다. 대략 7평 정도 되는 공간에 지어진 3층 짜리 건물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더니 참 특이한 건물이네’라고 지나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네코비루는 사람을 위해 지은 건물이 아니라 책을 위해 지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지하에서 3층까지 이 건물의 내부는 주제별로 나눠진 서가로 가득하다. 이 특이한 건물의 소유자는 바로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다.

독서 방법론과 도서보관 방법론 담아
이번에 나온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이언숙 옮김, 청어람미디어)는 네코비루의 주인답게 독서로 점철된 자신의 삶에서 쌓은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서점에서는 인문서로 묶이겠지만, 이 책은 실용적인 매뉴얼에 가깝다.

1천 권 안쪽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매뉴얼이 필요 없다. 그저 읽으면 된다. 하지만 5천 권이 넘어가면 책 보관에서 자료 정리까지 선배의 조언을 듣지 않을 수 없다. 5천 권 정도가 되면 한 방에 책을 밀어 넣다가는 집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샀던 책을 또 사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매뉴얼이다.

이 책은 크게 독서 방법론과 도서보관 방법론으로 나뉜다.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 ‘체험적인 독학 방법’,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등이 독서 방법론이라면 ‘나의 요새’, ‘서고를 신축하다’, ‘나의 비서 공모기’는 도서보관 방법론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여타 독서술 관련 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재미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독서에 무슨 방법론이 필요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서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아울러 지성을 발달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많다.

다치바나가 제안하는 독서술은 1) 빨리 읽으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할 것 2) 유용한 책이라면 다시 읽을 것 3) 관심이 가는 분야라면 출판된 모든 책을 읽을 것 등이다. 이는 사실 다른 속독술 관련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일반적인 속독술 관련 책과는 그 차이가 확연하다.

예컨대 그가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쓴 ‘나의 독서를 되돌아본다’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던 초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을 읽던 중학교 3학년 때까지의 독서체험을 담은 글이다. 이 글에서 다치바나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은 모두 요약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앞으로 원서를 읽은 뒤에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거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읽기 어렵다는 식의 평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건 약과다. 지금까지 독서편력을 대담 형식으로 다룬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보면 대학시절 번역된 모든 책을 다 읽었고 책을 읽기 위해 10개 국어를 공부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치바나가 말하는 독서술은 엄청난 설득력을 지닌다. 또 독서(input)와 저술(output)의 비율이 100:1 정도로 명확해 일본공산당에서 뇌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에 이르는 글을 남겼으니 그의 독서술을 믿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독서와 저술의 비율이 최소한 100:1
도서보관 방법론에 이르면 더 대단하다. 사과 상자를 층층이 쌓아올려 보관하던 초기 시절에서 네코비루를 짓고 난 뒤까지 효율적으로 도서를 보관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 경험담이 고스란히 담겼다.

단칸방 시절에 목조 아파트가 책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았던 일이나 책을 보관할 곳이 없어 새로 방을 빌리다가 결국에는 네코비루를 짓는 그의 모습은 책벌레라는 말로도 다 설명이 어려울 지경이다.

‘서고를 신축하다’는 바로 네코비루를 짓는 과정을 담았다. 건평 7평, 3층짜리 건물에 불과하지만 네코비루 안에 들어간 서가의 총 길이는 7백 미터에 달하고 약 3만5천 권의 책을 꽂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아무런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한 다치바나는 70살까지 납입하는 조건으로 은행대출을 받아 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흩어졌던 자료를 채워 넣으니 남는 공간이 고작 1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게 1993년의 일이니 벌써 오래 전에 네코비루도 한계 상황에 도달했을 듯하다.

다치바나는 몇 천년의 세월을 견딘 플라톤 정도가 아니라면 아직까지 고전으로 확정할 만한 책은 없다고 말한다. 독서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의 말과 비슷하다. 하지만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다치바나는 자기가 말한 고전을 다 읽었다. 그럼 독서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 읽어봐야 아느냐고? 물론이다. 다치바나는 그 책들을 다 읽었기에 40권이 넘는 전문서적을 펴낼 수 있었다. 다치바나가 말하는 독서술이란 바로 이 아웃풋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연수/ 리브로)


■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의 세계'

■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대공개

■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적망국론'


■ 독서의 역사

■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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