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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의 4형제 돕는 북성교 어린이들|점심 주고 옷가지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움막 속에서 버림받은 어린 네 생명을 위해 국민학교 5학년 여학생들이 40여 일을 하루 같이 점심밥을 나눠주고 옷을 갖다 준 아름다운 이야기.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산35번지, 북성국민학교의 돌담을 따라 숨가쁘게 치달은 고갯길 위에는 판자로 엉성하게 사방을 둘러막고 거적으로 위를 덮은 조그만 움막이 있다.
짐승의 우리와도 같은 이 움막 속에는 백상오(9) 수영(7) 수만(4) 수원(2)의 4형제가 북성국민학교 5학년 어린이들이 갖다주는 도시락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4형제가 아현동 149의 셋방에서 쫓겨나 병든 아버지(백남산·45)와 어머니(최춘임·32)를 따라 이 움막에 자리잡은 것은 지난 9윌 이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 최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날품도 팔고 술집 심부름도 하여 얻어온 밥과 반찬 부스러기로 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는 갑자기 어디론지 가버린 채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최 여인이 어느 공장직공에게 시집을 갔다느니, 어느 술집의 식모로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수군거렸다. 그때부터 백씨의 이름 모를 병세는 더욱더 악화하였다.
약 40일전 먹장 같은 구름이 하늘을 덮은 어느 날 밤 마을 사람들은 백씨가 『상오엄마, 상오 엄마!』하면서 그의 아내 최씨를 목매어 찾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튿날 새벽 거적문을 열어본 마을 사람들은 피를 토하고 앉은 채로 죽은 백씨의 시체를 보고 움막 밖으로 끌어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죽음도 모른 채 깊은 새벽잠에 빠져 있었다. 상오군은 그날부터 그의 힘으로 갈 수 있는 여러 동네를 헤매었다. 행여 그리운 어머니를 만날까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기다림과 원망 속에 여름이 갔다. 북쪽하늘에서 기러기가 울고 왔다. 밤이면 판자 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이 차가와 수원군과 수만군은 지치도록 울어됐다.
그 앞을 지나 등교하던 북성국민학교 5학년 12반 여학생들은 이들을 돕자고 발벗고 나섰다. 동사무소를 찾아가 부탁도 해봤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는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고 외면해 버렸다. 할 수 없이 이들은 돌아가면서 이 형제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기로 했다. 집에서 가져온 헌옷으로 헐벗은 이들을 감싸주기도 했다.
그러나 닥쳐올 겨울 날씨에 방이라도 하나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틀림없이 얼어죽을 것이라고 5학년 12반의 원계종(11)양이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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