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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규장각 돌아나오면 봉모당, 봄날 앵두꽃 눈부신 이곳
━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19) 서편 궐내각사. 중간에 냇물이 흐르는 구조를 띠고 금천의 동쪽엔 옥당과 약방이 금천의 서쪽엔 규장각과 검서청이 있었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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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기생 1000명…‘흥청망청’ 유래한 연산군의 주색잡기
━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4) 연산군은 성종의 장남으로 생모는 폐비 윤씨이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집권 초기에는 국정을 잘 다스려 성군의 기질이 보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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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복 악순환 끊고 새 시대 통합을 꾀하다
【총평】 ? 영조는 탕평 정책에 동의하는 온건하고 타협적인 인물을 등용하여 정국을 운영했다. 영조는 공론의 주재자로 인식되던 재야 산림을 정치권에서 배제했고, 붕당의 기반인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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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조선 개조 시작되다!
【총평】 ? 정조는 양주에 있던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소를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고, 현륭원 북쪽의 팔달산을 끼고 새로운 성곽 도시인 화성을 건설했다. 정약용 등 실학자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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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교수, 유득공 著 '발해고' 번역출간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발해' 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립한 7~10세기의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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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마음 여니, 백성이 깨어나고, 문화가 꽃피다
학문을 숭상한 정조는 특히 책가도(冊架圖·서가 안에 책을 비롯해 도자기·문방구·향로 등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그린 그림)를 좋아했다. 정조가 사랑한 것은 책 자체의 그림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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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친목 풍속도 보여주는 '만남과…' 전시회
조선시대 문인들은 모임이 있은 뒤 만나는 뜻을 그림으로 남겼고 헤어지는 아쉬움을 시와 글씨로 달랬다. 친구, 관아 동료, 은퇴 관료들은 계모임, 시회 후에 계회도(契會圖).아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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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세종 리더십의 원천은 ‘워커홀릭’
세종처럼 박현모 지음,미다스북스 496쪽, 2만5000원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김준혁 지음, 여유당 368쪽, 1만5000원 정권 교체기.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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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문화 유씨
문화유씨의 시조는 고려개국공신 유차달. 유씨는 차씨와 같은 시조에서 갈려나간 「동족이성」이라는데 특색이 있다. 이처럼 조상을 같이하면서 성을 달리하게 된데는 다분히 전설적인 기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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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분야 중요 저술 10권 묶어|『한국 한적 민속 총보』제 1 집 출판
「한국 한적 민속총보』 제1집이 최근 자유중국에서 출판 되었다. 전 12집의 이 총서는 임동권(한국민속학회장), 이원식(중국문화학원 한국연구소장), 누자광(중국민속학회리사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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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중엽∼말엽 인물중심(17)-유홍열|북학파의 영수 연암 박지원
◇쟁쟁한 양반 후손 박지원은 영조의 사위이던 금성위 박명원의 8촌 아우라는 쟁쟁한 양반집의 자제로서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탓으로 늦게야 글을 배우되 벼슬을 얻으려는 데는 뜻을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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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기록 『해동장고』발견-서손들의 인권회복 투쟁사
조선조 태종13년(1413년)부터 철종3년(1852년)까지 서손들의 인권회복투쟁사를 기록한 『해동장고』상하권이 실학의 대가 이덕무 후손댁에서 최근 발견되어 학계에 공개됐다. 해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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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때도 프로棋士 있었다
▶ 김홍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후원아집도(後園雅集圖)'의 일부분. 109.3×5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세기 조선 후기에도 요즘처럼 바둑만으로 생업을 유지하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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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김정희, 살아있는 금석학으로 연경을 사로잡다
추사 김정희의 초상 2008년 우현(又玄) 송영방(宋榮邦) 선생이 기존의 초상화를 참조해 추사의 제주도 유배 시절 모습을 표현한 초상화다. 추사의 초상은 이한철(李漢喆)·허련(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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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차작학사
이덕일역사평론가남이 답안을 대신 써 주는 것을 차필(借筆), 또는 차작(借作)이라고 한다. 가장 성행한 것이 과거 답안지 차작이었다. 순암 안정복(安鼎福)이 쓴 『진사 황최(黃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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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못 하면 선비라 할 수 있나 … 한국인 DNA엔 본디 음악이 있었네
조선 후기 화가 김양기(김홍도의 아들)가 그린 ‘월하선인취생도’(月下仙人吹笙圖). ‘달빛 아래에서 생황을 부는 신선’이라는 뜻이다. 생황은 여러 개의 대나무 관이 둥글게 박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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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 출신 지식인 등용으로 노론의 특권 카르텔에 맞서다
청나라 나양봉이 그린 박제가 초상. 조선에서는 서자라고 천대받았던 박제가는 이미 청나라에 문명(文名)이 알려져 있었다. 사진가 권태균 성공한 국왕들 정조⑤ 북학파의 ‘도발’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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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대 ~ 한민국!’의 열정을 일상으로 가져오라
이제 아쉬움은 좀 접혔나요? 아깝게 사라진 8강의 꿈 말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도 잘 뛰었기에 쉽지 않을 테지요. 하지만 4년 뒤 다시 꺼내 들려면 이제 잘 갈무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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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 "뿌리찾기"활발|중국아류아닌 우리 문학으로 인식|인구·국역도서 출간 잇따라
한문으로 씌어진 선인들의 문학작품인 한국 한문학에 관한 연구및 국역서 출간이 활기를 띠고있다. 한국한문학이 중국한문학의 단순한「주변장르」라는 소흘한 대접에서 벗어나면서 한문학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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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등 개혁관료 대거 중용 閥 아닌 능력 우대 사회 됐을 것
관련기사 정조, 탕평 시스템 책략의 정치로 완성했다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나를 까맣게 잊었는가? 내 모과를 보내니 답장을 받을 수 있을꼬 反개혁세력 총공세 시작된 시점 반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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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을 한민족사 정점에 놓고, 중국과 분리된 정통史 첫 서술
천은사.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저술할 당시 살던 강원도 두타산 기슭의 집터에 지어진 절이다. 1948년 화재로 전소됐다가 72년부터 재건됐다. 삼척시 청라초등학교 5~6학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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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NIE] 정조의 개혁은 왜 후대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조선시대 정조는 드라마·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임금이다. 삶이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지켜봤다. 그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른 뒤 수원화성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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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열흘 탈주 생활이 행복했던 서울동물원의 ‘꼬마’곰
━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94) 대구도시철도 3호선 용지역에 마련된 동물사진 갤러리. [사진 송의호]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은 역사 구내 화장실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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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화 〈만남과 헤어짐의 미학〉전
조선시대 문인들은 모임이 있은 뒤 만나는 뜻을 그림으로 남겼고 헤어지는 아쉬움을 시와 글씨로 달랬다. 친구, 관아 동료, 은퇴 관료들은 계모임·시회 후에 계회도(契會圖)·아집도(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