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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열흘 탈주 생활이 행복했던 서울동물원의 ‘꼬마’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94)

대구도시철도 3호선 용지역에 마련된 동물사진 갤러리. [사진 송의호]

대구도시철도 3호선 용지역에 마련된 동물사진 갤러리. [사진 송의호]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은 역사 구내 화장실마다 작은 사진 갤러리가 꾸며져 있다. 이곳 사진이 승객을 잠시나마 미소 짓게 한다. 모두 동물의 내면을 의인화한 사진이다. 용지역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개울을 건널까 말까 망설이는 갈등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 아래 한 줄 제목이 재치 있다. “갈등의 순간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옆에는 개미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맞들고 있다. 거기엔 ‘인사만 잘해도 성공은 다가옵니다’란 제목을 붙였다.

이들 사진은 모두 박경대 동물사진가가 촬영했다. 그는 30년 이상 동물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케냐‧우간다‧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와 벵골 호랑이가 있는 인도 등지 정글과 동물원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그는 동물을 무지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은 참 신기해요.” [사진 박경대]

“세상은 참 신기해요.” [사진 박경대]

"조금 더 힘내요. 오를 수 있어요." [사진 박경대]

"조금 더 힘내요. 오를 수 있어요." [사진 박경대]

"말해요. 누군가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거예요." [사진 박경대]

"말해요. 누군가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거예요." [사진 박경대]

사랑은 전문성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동물을 사랑한 실학자들은 깊은 관찰을 통해 불후의 저작을 남겼다. 흑산도에 귀양 간 정약전은 물고기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자산어보』를 썼다. 이서구는 젊은 시절 앵무새를 기른 경험을 토대로 『녹앵무경』을 지었다. 또 유득공은 호랑이 이야기를 모아 『속백호통』이라는 책을 남겼다.

박 사진가는 동물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숱한 야생동물을 대하면서 한 가지를 확신한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야생동물이 먹이 걱정 없는 동물원의 개체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우리에서 똑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는 북극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굳히게 되었다. 박 사진가는 북극곰의 행동이 궁금해 가까이 지내는 수의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수의사는 좁은 우리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로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인간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동물원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또 A4 용지 한장 크기 우리에 갇혀 평생 알만 낳는 산란계를 보면 자신의 몸이 결박된 듯 답답해져 폐소공포증을 느낀다.

오래전 곰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한 적이 있다. 여섯 살짜리 곰은 서울동물원에서 ‘꼬마’라는 애칭으로 불린 말레이산이었다. 당시 뉴스 때마다 “청계산 등반 시 주의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사람이 다칠까 봐 걱정했지만 박 사진가는 그 꼬마가 잡히지 않고 대륙을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행방이 묘연했던 꼬마는 탈주 열흘 만에 청계산 정상 부근에서 붙잡혀 다시 철창신세가 되었다. 구속 사유는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다행이라지만 꼬마는 그동안의 생활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사진 박경대]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사진 박경대]

"세상일은 멀리 보세요." [사진 박경대]

"세상일은 멀리 보세요." [사진 박경대]

3호선 사진 중엔 동물원의 오랑우탄이 손으로 빛을 가리고 응시하는 사진도 있다. 거기엔 “세상일은 멀리 보세요”라고 적었다. 박 사진가는 “영장류는 사람처럼 손가락에 지문이 있고 생리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인간은 동물을 우리에 가둘 권리가 있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오랜 기간 동물 사진을 찍으면서 꿈 하나가 생겼다.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자연동물원화 사업이다.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이 너무 불쌍해서다. 또 동물은 우리 인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행자란 생각에서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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