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김연준 가곡작품 발표회

    ○…한양대 김연준 총장(67)의 가곡작품 발표회가 4월 3일 미국 「뉴욕」「카네기홀」에서 열린다. 발표작품은 현대가곡·서정가곡·성가 총25곡. 테너 전광·신영조씨, 바리톤 진용섭씨

    중앙일보

    1981.03.27 00:00

  • 연극전용 소극장은 「공연장규정」서 제외돼야 한다

    삼일로 창고극장의 대표로 젊은 연극인들의 소극장 활동을 뒷바라지해온 원로 연출가 이원경씨(예술원회원)는 지난 12일 「연극의 소극장문제에 관한 건의문」을 청와대 및 문공부·서울시·

    중앙일보

    1980.12.15 00:00

  • 올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 연극배우 백성희 씨

    16세 때부터 37년 간 연극무대를 떠나지 앉고 지켜온 연극배우 백성희씨(53·국립극단단원)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29회 서울시문화상(연예부문)을 받게됐다 (시상식은25일하오2시

    중앙일보

    1980.11.20 00:00

  • 제 모습 잃은 예 국회의사당…도로확장으로 현관 헐려

    ○…옛 국회의사당인 세종문화회관별관(서울태평로1가50)의 정문과 현관이 태평로 확장공사에 밀려 헐렸다. 헐린 현관은 너비12m로 「코리아나·호텔」에서 덕수궁사이 도로확장에 수용됐으

    중앙일보

    1980.06.09 00:00

  • (2729)-영화60년(제67화)(29)최초의 영화제/38년에 신문사주최로 영화45편 올려/관중투표로『아리탕』등 베스트10뽑아

    총독부에 의해 우리 영화는 날이 갈수록 더욱 목이 죄어들었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이런탄압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영화제작에 혼신의 정열을 쏟았다. 화랑영화사가 제

    중앙일보

    1980.01.29 00:00

  • (14)-정치에서 행정으로

    『…이 건국기초에 요소가 될만한 몇 조건을 간단히 말하려 하니 첫째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디기도 하지만 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악을

    중앙일보

    1978.08.21 00:00

  • 시민회관 별관 개관

    서울명동의 예술극장이 폐관됨에 따라 앞으로 공연예술의 중심무대 역할을 하게될 서울 시민회관별관 (구국회의사당)이 28일 개관했다. 퇴색하여 우중충하던 건물을 「베이지」빛 「타일」로

    중앙일보

    1975.11.29 00:00

  • (1447)전국학련-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전국학생연맹은 8·15 광복1주년을 기념하는 「독립전취대회」와 「문화예술제」를 주관해 성황을 이뤘다. 문화예술제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만이 할 수 있는 행사였다. 연극은 최

    중앙일보

    1975.09.25 00:00

  • "이 손들 보험에 들었나"

    김종필 국무총리는 부인 박형옥 여사와 함께 28, 29일 연 이틀 국립극장의 음악회를 감상. 음악회가 끝난 뒤 이원경 문공장관이 베푼「리셉션」에도 참석한 김 총리는 이대욱·문용희·

    중앙일보

    1975.08.30 00:00

  • (1416)|전국학연-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학생들의 애국운동에는 시공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내가 학병에서 돌아와 서울에 올라오기 전부터 있었던 「조선 학도연」의 자발적인 애국활동이 그 좋은 예. 조선 학도대는「단결과

    중앙일보

    1975.08.19 00:00

  • (1396)전국학련(제47화) 나의 학생운동 이철승(8)

    만일 그때 내가 중국으로 탈출했더라면 오늘날의 내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탈출이지 당장 울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에 중국으로 망명하는 것은 더욱 큰 일이 아닐

    중앙일보

    1975.07.24 00:00

  • 애환21년…떠나는「의정산실」

    『「아듀」태평로 의사당』국회가 9월 정기국회전에 신축 여의도 의사당으로 옮기게 됨에따라 8일의 국회는 태평로 의사당의 마지막 회의가 되는 셈. 8일의 국회는 지난21년간의 술한 진

    중앙일보

    1975.07.08 00:00

  • (1054)양악백년

    「테너」이인범 초창기의 성악가 안기영 현제명을 이어서 「테너」로는 이인선·이유선형제, 그 다음에는이인범이 활약했고, 「소프라노」로는 정동모 채선섭을 이어 이관옥 김자경 김천애등이

    중앙일보

    1974.05.22 00:00

  • (7)명창 김소희씨

    판소리『춘향가』의 명창 김소희 씨에겐「올 가을은 유난히 기대되는 계절」이다. 그는 국립극장 이전개관기념 공연으로 다가오는 10월에 무대에 올려지게 되는 국극『수궁가』에서 도창을 맡

    중앙일보

    1973.09.11 00:00

  • (447)전시의 문화인들(12)

    91) 연예인들이 전투중인 일선장병이나 후방부대를 위문한 것은 물론 전쟁기간이 가장 활발했으나 군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인 48년께부터 였다. 그것은 군 정훈국 관계자들이

    중앙일보

    1973.04.18 00:00

  • 「로젠스트크」와의 「인터뷰」

    세계적인 지취자 「.조십·로센스트크」씨가 내한, 오는 26일과 31일의 연주회를 앞두고 국향「홀」에서 본격적 연습에 들어갔다. 오전 「리허설」을 끝내고 잠시 시간을 낸 그는 서울이

    중앙일보

    1972.10.25 00:00

  • (2)산·강·길·도시|본사 이광표 특파원 평양 왕래기

    산천은 여구했고 비목도 다를 것이 없었다. 「27년의 세월」에 가렸던 산하가 눈앞에 다가온다. 8월29일 10시40분.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자 펼쳐지는 풍경. 우거

    중앙일보

    1972.09.05 00:00

  • 『지나의 밤』의 일 가수 이향난씨 내한

    「리꼬오랑」이란 예명으로 『지나의 밤』 『소주야곡』 등을 불러 해방 전 한때 이름을 떨쳤던 일본의 영화배우이며 가수인 「야마구찌·도시꼬」여사(52)가 주한 일본대사관의 참사관으로

    중앙일보

    1972.03.11 00:00

  • (353)발명학회(7)|목돈상

    과학「데이」실행회는 제1회 행사만을 마치고 곧 해산했다. 제2회 때부터는 거창한 규모로 발족한 과학지식 보급회가 모든 행사를 전담하게 됐다. 특히 중단됐던『과학 조선』을 2월부터

    중앙일보

    1972.01.11 00:00

  • (343)|가요계 회면 사(23)|고복수

    처음 일본공연은 태극기사건으로 실패했으나 조선악극단은 그 뒤 연달아 일본에서 공연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일제탄압이 심해 가는 곳마다 슬픔을 겪었다. 41년12월8일 제

    중앙일보

    1971.12.27 00:00

  • 고복수

    1925년에서 1935년 사이에 가요계는 요람기를 벗어나 황금시기에 접어들 준비를 갖추었다. 가수들이 속속 동강하여 처음에는「레코드」로 보급되던 노래가 가수의 수가 늘어나는데 따라

    중앙일보

    1971.12.18 00:00

  • (287)(15)김효록

    한국에 현대학생 연극이 수입된 것은 1925년께 일본유학생들이 귀국하여 연극「그룹」활동을 한데서 비롯됐다. 이들 「그룹」중 하나는 「현대극연구회」이고 또 하나는「목요회」였다. 보

    중앙일보

    1971.10.22 00:00

  • (187)방송 50년(16)이덕근

    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 할 때까지 우리말을 마지막까지 사용할 수 있던 곳은 오직 제2방송과 뿐이었다. 그래서 제2방송과장인 이혜구씨는 언제나 부하직원들에게『여기는 우리말

    중앙일보

    1971.06.23 00:00

  • (176)방송50년(5)|이덕근(제자는 필자)

    연극이 처음으로 전파에 실린 것은 1925년의 여름, 방송국 개국을 앞둔 시험방송 때였다. 시험방송 중이던 체신국 청사(지금의 종합청사자리)뒷방에서 조선 극우회가『새벽종』이란 연극

    중앙일보

    1971.06.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