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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조선 땅’ 일본 근대 지리교과서도 명시했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입증하는 일본 문부성 제작 교과서와 지리부도가 처음 공개됐다. 일본의 정부기구, 그것도 교육을 주관하는 문부성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만들거나 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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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땅” 日 내무성 의견 무시, 1905년 편입 주도
정무국장 시절 집무실에 앉아 있는 야마자 엔지로. 그는 독도의 일본땅 편입, 한반도 강점의 과정을 이끌었다. [중앙포토] 독도를 몰래 자신의 땅으로 편입한 일본, 그 뒤 다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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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분쟁 유발' 일본인 누구인가보니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정무국장 시절 집무실에 앉아 있는 야마자 엔지로. 그는 독도의 일본땅 편입, 한반도 강점의 과정을 이끌었다. [중앙포토] 독도를 몰래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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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죄로 사형 선고 받은 박열 “재판장, 수고했네”
도쿄대지진 때 불타는 도쿄경시청. 일본은 도쿄대지진의 혼란을 한인들에게 돌리기 위해 유언비어를 유포해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사진가 권태균] 일본에서 고학 중이던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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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00년 전 독도는 왜 다케시마로 둔갑했나
독도실록 1905 예영준 지음, 책밭 273쪽, 1만5000원 100년 전 독도는 바다사자의 일종인 강치 천국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강치는 기름과 가죽을 채취하는 데 이용됐다.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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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거사날, 민중 습격 두려워 조선총독부 건물 소등
서울역 광장의 강우규 동상. 64세의 강우규는 신임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던지고 사라졌으나 친일경찰 김태석에게 체포되었다. [사진가 권태균 제공] 운동의 시대⑥ 청년노인 강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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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하는 외톨이 청년을 위한 대학 화제
히키고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의 골치거리다. 젊은 나이에 외부 세계와의 문을 닫은 채 나홀로 생활을 한다.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쳐도 가족과의 갈등으로 혈족을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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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의 부활 ③
관련사진1926년 대심원 공판 때의 박열과 가네코. 두 사람은 한복을 입고 있다. 간토(關東)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1923년 9월 1일이었다. 재앙을 틈타 조선인이 방화와 살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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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지진은 신이 내린 비극, 그러나 재난 극복은 인간의 작품
인류 역사보다 더 앞선 지진의 역사는 소중한 목숨과 재산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재앙 그 자체였다. 때론 인적·경제적 피해로만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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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맥아더가 만들었다 ‘반쪽짜리’ 일본 민주주의
광복 64주년, 다시 보는 일본·일제 광복 64주년입니다. 이제는 해방둥이들 마저 2선으로 물러날 만큼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라 없는 설움, 그 역사적 교훈을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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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08 15 그날 무슨 일이 … ④
광복절(光復節), 8·15는 올해로 64년째. 광복절은 ‘잃었던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그 광복절에 나라의 주권을 되찾았던 것일까? 작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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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독도 문제를 촛불시위 식으로 해결하려 들면 안 된다.”독도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17일(현지시간) 일본문제 전문가인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현 동서대 석좌교수·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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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905년 ‘독도 = 한국 땅’ 알고도 강탈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1905년 2월 각의(우리의 국무회의에 해당) 결의로 당시 주인 없는 땅이던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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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도의 실효지배를 강화하자
일본은 역사상 세 번이나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했다. 첫 번째는 1696년, 당시 울릉도· 독도를 왕래했던 어부들이 소속된 돗토리번은 두 섬이 돗토리번 소속이 아니라고 중앙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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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전설로 남은 독도 강치 '리앙쿠르 대왕'
독도의 전설 ‘리앙쿠르 대왕’을 아시나요. 리앙쿠르 대왕은 1900년대 초 일본 어부들을 벌벌 떨게 했던 수컷 독도강치의 닉네임이다. 16일 독도본부 홈페이지에는 리앙쿠르 대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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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시시각각] 신판 우의마의
7년 전 해체돼 간판을 내린 대장성. 일본에서 ‘관청 중의 관청’으로 불리던, 참 힘센 기관이었다. 제국주의 시절 대장성 사무관이 만주 지역에 출장 가면 막강하던 관동군이 사열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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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일본 살려낸 대장성 개혁
“당신들은 모두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당신들의 두뇌는 정말 최고다. 따라서 머리 쓰는 일은 모두 제군들에게 맡기고 불초 가쿠에이는 책임만 지겠다.” 1962년 43세의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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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가 던진 건 '물통 폭탄'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은 도시락 모양의 수류탄을 감추고 식장에 입장했다. 그리고 식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식장으로 다가가 수류탄을 던졌다'. 두산 동아백과사전은 매헌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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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낸 원로 여배우 최은희
“나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한데, 어쩌다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되었을까.” 원로 여배우 최은희(77)씨는 지난주 펴낸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랜덤하우스)에서 한탄조의 이 자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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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 소련으로 강제 연행됐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이 소련으로 강제 연행됐다는 미국 국방부 보고서가 공개됐다. 최근 비밀 해제된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이라는 문서에 따르면 이들은 정전협정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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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日 소비자물가 지표된다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음식 '스시'가 최신형 평면TV와 함께 일본 소비자물가조사(CPI) 대상품목에 포함됐다. 22일 BBC뉴스는 일본 내무성이 CPI 측정의 기준이 되는 상품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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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첫 난민 문제 국제 세미나 열어
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유엔의 난민.법률 전문가를 평양으로 초청, 난민과 무국적자 문제에 대한 국제조약과 관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16~1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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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1949. 1. 06 2차대전시 일제에 의해 강제 징모되었던 한국인 출신 포로병 3,182명, 소련으로부터 귀환 1949. 1. 12 박헌영 외무상, 북한 주재 소련 특명 전권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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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징용 사망 한인 765명 신원 확인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 후쿠오카 일대 탄광 등에 동원된 한국인 징용자 가운데 숨진 765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동아일보는 후쿠오카 현 내무성 특별고등과(사상범을 담당하던 경찰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