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ㆍ25 소군참전 소 언론 첫 보도
【동경=방인철특파원】 소련 언론들은 25일 한국전쟁개전 40주년을 맞아 소련군 부대가 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고 지지(시사)통신이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개혁파주간지
-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17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정태식주선… 당상임위원에/부책임명 얘기듣곤 “이젠 죽는구나”생각이… 49년 9월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
6ㆍ25 40주년/관련단체 기념행사 줄이어
25일은 6ㆍ25 40주년. 이날을 맞아 각 관련단체들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갖고 그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한국자유총연맹(총재 정일권)은 이날
-
「6ㆍ25」,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사설)
◎동란 40돌 맞아 생각해보자 해마다 맞는 6ㆍ25이지만 올해만큼은 그 의미가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지루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상투적 냉전논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40년
-
일 전문가 오코노기교수 6ㆍ25 40주 인터뷰
◎“김일성 무너지면 북한 내전가능성”/김일성이 스탈린 설득하여 도발/미군철수는 맥아더 진언 따른 것 일본의 북한문제전문가인 오코노기(소차목정부) 게이오대교수는 25일 한국전쟁 40
-
한국전 참전 소 공군지휘관 오시긴씨 인터뷰(재조명 6ㆍ25:7)
◎“중공군위장… 한국어로 교신했다”/20명이 훈장받았지만 공적란 “빈칸”/소 정부서 공식언급 꺼린 「극비참전」 『우리는 중공군 모자와 중공군 군복을 입고 활동했다. 또한 비행중일때
-
스탈린 오판으로 한국전쟁 일어나/일ㆍ대만은 어부지리
【홍콩=연합】 1950년 6ㆍ25는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오판에 의해 발생했으며 이 전쟁의 발발로 남북한은 물론 미국ㆍ중국등이 모두 막대한 손실을 입은 반면 일본과 대만이 어부지
-
빨치산의 남과북(촛불)
6ㆍ25를 전후해 빨치산 3천여명을 양성,지리산ㆍ태백산 등에 남파시켰던 전 북한강동정치학원 원장 박병률씨(82ㆍ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일요일인 24일 대학극장 앞에서 바로 그 빨
-
분단문학(분수대)
6ㆍ25전쟁 40주년을 맞아 최근 우리 문단과 국문학계 일각에서는 남과 북의 문학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분단문학」이라고 통칭되는 남북의 문학이 하나
-
장정렬씨(전쟁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의 6ㆍ25 참전기(일요인터뷰)
◎“전장교훈 되새겨 전쟁예방”/전우들의 외마디 소리 아직도 “생생”/전쟁자료 정리해 실상 알리고 싶어 한국현대사 최대의 결절점이자 전쟁사상 최악의 살상ㆍ파괴지향적이었던 참혹한 동족
-
영 오클랜드교수 초청 6ㆍ25 심리전 강연회/관훈클럽
관훈클럽(총무 신용석)은 서울 외신기자클럽(SFCC)과 함께 국제심리전학회 명예사무총장인 영국의 로드 오클랜드 버밍검대학교수를 초청,26일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회원을
-
“한반도에 긴장 고조 미ㆍ남한이 책임져야”/북경주재 북한공사 주장
【서울=내외】 북한의 북경주재공사인 배영제는 23일 6ㆍ25 40주년을 맞아 중국의 내신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조선반도에서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 수 있는 극히 위험
-
40년만에 북에서 온 “혈육소식”
◎인민군 끌려간 뒤 “생이별” 원병전씨/원씨 친구의 조카 중국교포 통해/고향에 두고온 4남매 편지받아/기다리다 고혈압으로 쓰러진채/동봉사진도 못봐 주위서 애태워/반공포로 석방후 재
-
문학을 통해 본 40년/좌담(재조명 6ㆍ25:6)
◎우익적 시각서 「탈이념」으로 변화/초기엔 체험,80년대 들어 역사적으로 파악/외세로부터의 독립ㆍ통일지향 문학이 90년대의 과제 6ㆍ25발발 40주년. 6ㆍ25는 통일이 되면 의당
-
6ㆍ25는 스탈린이 명령/소 주간지 “북한서 도발”
【동경=방인철특파원】 소련 주간지 「모스크바뉴스」 최신호는 『한국전쟁은 북한측이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개시했다』는 요지의 논문을 게재했다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23일 모스크바발로
-
유엔군북진이 중국군개입 불렀다/영 자료서 밝혀진 6ㆍ25참전 배경
◎맥아더,주은래경고 무시 진격/미도 영 완충지대안 반대 “월경추격”통고 한국전에 중국이 어떻게 개입하게 됐느냐는데 대한 진상이 아직까지 소상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당시 중
-
“서울 함락보고 남침 알게 됐다”/소 거주 북한출신 18명 회견
◎소 태생이라 사형 겨우 모면/전 강동학원장 “이현상도 교육시켜” 해방이후 북한의 권력핵심에서 활약하다 소련으로 추방됐던 재소 한인 18명이 MBC 초청으로 조국을 찾아 6ㆍ25를
-
50년 10월께부터 소 공군 참전(재조명 6ㆍ25:5)
◎김석환특파원 모스크바 현지취재/수풍댐등 보호위해 중국서 발진/미기 격추때마다 상금… 퇴역자엔 「침묵」강요 6ㆍ25발발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소련군이 언제,얼마나,누구의 결정에
-
“6ㆍ25참전했던 소 공군 중공 팽덕회 지휘”
◎소 극동문제연 한국 관계책임자 【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한국전쟁 당시 소련은 공군을 중심으로 참전했으나 소련군소속이 아닌 중공군소속으로 참전,당시 중공군 최고사령관인 펑더화이(팽
-
“남북한 합의사항이행 감시중요”/「한반도 전쟁방지」…국방연 세미나
◎검증 보장돼야 상호 신뢰가능/군사력공개 제도화… 불가침선언도 뒤따라야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남북한간 상호합의사항 이행 여부를 감시하고 확인할 수 있는 기구 설립등 검증문제
-
진상 공개 꺼리는 크렘린/모스크바 김석환 특파원(취재일기)
개방과 개혁을 내세우며 철의 장막을 걷고 있는 소련이 우리민족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준 6ㆍ25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크렘린」이었다. 6ㆍ25 40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군이 어떤
-
납북길 뒤처지면 마구 사살(재조명 6ㆍ25:4)
◎미아리 고개/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흔/「반동」몰아 41명 한구덩이서 학살 한실부락/억울한 희생 보상실마리 못찾아 거창학살/속초ㆍ고성 생이별 6만여명… 망향과 아픔의 40년 6ㆍ2
-
사천만겨레 모두가 피해자(재조명 6ㆍ25:3)
◎도표로 본 참상/장벽은 더 높아져 일부선 이질화 현상까지 3년1개월동안 치러진 6ㆍ25는 이 민족 모두를 희생자로 만들었다. 전쟁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참혹했던 6ㆍ25동란중 국군
-
문산에 세울 「평화의 탑」
전쟁기념사업회(회장 이병형)는 19일 6ㆍ25 40주년을 맞아 서울 중지도에 세우려던 가칭 「평화의 탑」을 건립 예정지를 변경,경기도 파주군 문산읍 사목리 일대 4만6천여평의 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