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남과북(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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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6ㆍ25를 전후해 빨치산 3천여명을 양성,지리산ㆍ태백산 등에 남파시켰던 전 북한강동정치학원 원장 박병률씨(82ㆍ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일요일인 24일 대학극장 앞에서 바로 그 빨치산을 다룬 영화 『남부군』을 관람,원작자 이태씨(62)와 만났다.
6ㆍ25 40주년을 맞아 방송사의 초청으로 「남한」을 찾은 박씨는 47년부터 50년까지 빨치산 교육 총책임자였던 사람.
24일오후 퇴계로 대한극장에서 있은 관람은 박씨 스스로 『빨치산을 다룬 영화가 상영된다는데 한번 직접 보고싶다』고 원해 이루어졌다.
『빨치산 대장 이현상도 내가 직접 교육시켰지만 그들이 악전고투,산악전에서 저렇게 처절하게 죽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극장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남부군』 저자 이태씨(왼쪽에서 두번째)를 만나자 영화속에서 받은 충격이 채가시지 않은듯 상기된 얼굴로 이같이 첫말문을 열었다.
저자 이씨 역시 스스로 청춘을 바쳐 빨치산 활동을 했던 인물.
『이상을 좇는 혁명가들은 죽을때 마지막으로 부르는 조국이 마땅히 있는 법인데 지리산 빨치산들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버림받아 부를수 있는 조국조차 없이 숨져갔다』는 이씨의 대답에 박씨의 표정에서는 일순간 연민의 빛이 떠올랐다.
극장 부근 찻집으로 자리를 옮긴 두사람은 생전 처음 얼굴을 마주 하는 사이인데도 오랜 옛친구 사이처럼 손을 마주잡고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남한에 있다는 이현상의 딸을 만나고 싶다』는 박씨에게 이씨가 『딸은 이미 월북했고 산에서 이현상을 따르던 간호부와의 사이에 난 아들이 있는데 이미 성마저 바꾸고 숨어살고 있다』며 또다른 상처의 한 부분을 전하는 순간 8순의 박씨 얼굴에 또한번 슬픈표정이 떠올랐다.
동족간의 이념전쟁 6ㆍ25는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깊은 상처이상 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박씨의 영화관람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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