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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乾鳳寺
단풍이 곱게 물든 설악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하다. 점봉산 너머로 짧은 해가 기울 때쯤 따사로운 가을햇살을 듬뿍안고 있는 설악의 넉넉한 모습 속에서 정신적 풍요로움을 맛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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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 訪北수행한 2男 金信.비서 鮮于鎭씨 회고
남북한 양쪽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48년4월19일. 開城북쪽 북위38도 선상.白凡 金九선생이 南北의 경계임을 알리는 표지판 앞에 섰다.金日成과의 통일협상을 위해 平壤으로 가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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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루앞두고 4후보가 내다본 승산근거
l5일 0시, 중앙당사 통일관 3층 상황실. 날짜판이 D-1일로 바뀌면서 11대의 팩시밀리가 일제히 작동, 결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짐하는 격려전문이 각 시·도지부에 전송되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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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텔-식당-콘도-골프장외에 변태 숨기려는 유흥업소서도
"특권층의 신분 과시용 안될지…" 『Menbers Only(회원전용)』-. L호텔 38층의 멤버십 식당인 「메트로폴리탄」입구에 들어서면 일단 정지 교통표지판 크기의 팻말이 붙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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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번호별 격번 정차
서울시는 17일 4대 문안 도심구간을 비롯, 도심과 변두리를 잇는 시내버스정류소의 버스정차체계를 전면 개편, 3월15일부터 일반버스는 노선별로 버스번호를 홀수와 짝수로 구분해 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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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가례15년…낯익은 얼굴은 갈수록 줄어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관습처럼 정해진 일정이 있었다. 동문이오, 시인인 K여사와 함께 15년이 넘게 지켜온 일, 스승과 문단 어른에게 하례를 드리는 일이었다. 은사이며 문단의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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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경비…"방심"이빚은 참사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버스」「트럭」충돌 추락사고= 벽지를 운행하는 시외완행「버스」의 허술한 정비 및 운행상태·나쁜 도로사정, 그리고 업자들의 설마 하는 방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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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위험 안은 교통신호등|모양 통일안돼 혼란만 가중
국제제식(국제제식)으로 바뀐 서울시내의 교통신호 등이 각양각색이다. 원활한 교통소통과 차량의 안전 운행을 위한다는 이유로 국제제식의 교통신호 등이 서울시내에 등장한지 만2개월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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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에 덴 고양이―6·25 잊어버린 한국인은 없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중앙일보 초청으로 내한했던 「앙드레·퐁텐」 주필의 방한기를 『뜨거운 물에 덴 고양이』라는 제하로 보도했다. 「르·몽드」지는 땅굴을 남북 어느 쪽에서 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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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하수구 익사 등 3건의 소송서 서울시 잇달아 패소
서울시가 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제소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하고 있다. 서울 민사지법은 18일▲하천복개 공사 때 파 놓은 도랑에 빠져 숨진 한종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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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 수 시간만에 45만 부 매진 일어 판 『플레이보이』지 첫선
지난21일 일본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인 일어 판 「플레이보이」지는 45만 부가 발매당일 수 시간만에 완전 매진, 기록을 수립했다.. 75년7월 호로 발매된 이 잡지는 이날 상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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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 | 국립 경찰 창설 (37)|김태선
38선-. 조국의 허리를 남과 북으로 갈랐던 분단의 선. 그것은 국경보다도 더한층 높고 깊은 단절의 벽이었다. 국립 경찰의 젊은이들은 호국의 무거운 임무를 진 채 미처 펴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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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새벽 나는 똑똑히 보았다"
25일은 북한 공산군이 남침을 자행한 6·25 스물세돌. 1950년6월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은 일제히 38선을 넘어 남침을 자행했다. 그러나 그때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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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북간도(1)|이지택
이지택씨는 1898년 평남 강서군 태생, 올해 74세. 1910년에 용 정에 이주, 명동과 영신에서 공부했으며 3·l운동과 6·10만세사건에 앞장섰다. 왜경에 쫓겨 연해주에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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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은 해도 일할 땐 딴판 당시 백범 김구선생 비서
평양길…앞으로 7일. 첫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한 평양행채비가 막바지에 들어섰다. 온 국민의 관심을 지닌 한적대표단의 준비도 한창. 평양길은 일찌기 김구·김령직씨 등이 1948년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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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제16화 한·미 합동첩보비화「6006부대」(6)
38선 이북 동해와 서해의 수많은 섬 치고 6·25동란 때 특수해상도서작전에 참가한 용사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육지의 전선은 훨씬 밑으로 처져있었으나 바다에서는 평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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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중공군 개입(1)|운산의 첫 나팔소리|「6·25」21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미국이나 우리 한국이 가장 염려했던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은 그 동안의 구구한 억측을 깨고, 10월25일 실제 전투에서 확인됐다. 중공정권은 이미 9월 중순부터 북평 방송의 공식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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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낙동강아 잘 있거라(7)|북괴군의 참상 (하)|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북괴가 낙동강의 마지막 결전에 투입한 총 병력은 13개 사단의 9만8천명이었는데 8군의 총 반격을 받고 살아서 38선을 도로 넘어간 자는 2만5천 내지 3만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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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분단 사 반세기... 그 현장을 따라|남에의 갈망(하)
1945년 10월부터 북한의 곳곳마다 공산당의 입당공작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에 실패하자 신민당이란 꼭두각시 정당을 만들어 「인텔리」등을 포섭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신민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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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옥」을 증언한다.(상)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서울을 향해 강릉비행장을 떠난 KAL 소속 YS·11기는 예정보다 약간 늦게 이륙했다. 기체가 안전 고도를 잡고 서울로 향해 나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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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희망의 계단(7)
길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되어 누워 있었다. 오랜 세월을 길은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훤히 비어 있는 평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길은 외줄기 철원역을 기점으로 북에서 남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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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를 막자」|엉터리수영도구|단속할법규없어
O…섭씨30도에 다가 오르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됨에 따라 금년 들어 벌써 전국의 익사자는 61명-. 작년엔 6백74명이 죽었고 이중 1백38명이 서울의 각 유원지에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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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용호』…적전포진|「베트공·이잡기」첫 작전|「날르는 탱크」포탄세례
월남전쟁은 이미 월남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5천의 청룡해병이「캄란」만에 얼룩철모를 누비고 1천여 맹호선발대가「퀴논」만에 상륙했을 때 더욱 그러했다. 한달 전만 해도「캄란」과「퀴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