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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관장급 16명 이동

    정부는 30일 강영훈 외교 안보연구회장을 주영대사에, 박쌍룡 외무부 정무차관보를 주「제네바」대사에 임명하는 등. 대사 9명, 총영사 1명, 본부 6명 등 16명의 공관 장급 외교관

    중앙일보

    1980.12.30 00:00

  • 한-자유중국 관계는 불변

    정부는 미·중공 국교 정상화 결정을「카터」미 대통령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친서를 통해 사건에 통고 받은 바 있으며 미-중공 국교 정상화는 기본적으로 양국간의 쌍무적 관계일 뿐 아

    중앙일보

    1978.12.16 00:00

  • 「대륙붕」 중공 비난 반박|제3국 간섭을 불용-외무부

    홍일 외무부 대변인은 30일 한일 대륙붕 개발 협정이 주권 침해라는 중공 외교부의 최근 성명을 반박, 『한국은 국제법상 확립된 원칙에 따라 대륙붕을 탐사·개발할 주권적 권리 행사에

    중앙일보

    1978.06.30 00:00

  • 미, 도청 부인 공식 서한 전달|한국 정부에 스나이더 특명 전권 대사 이름으로

    미국 정부는 「월리엄·포터」 전 주한 미대사의 발언으로 야기된 청와대 도청 사건에 대해 특명 전권 대사의 서한으로 도청설을 부인하는 공식 서한을 정부에 보내 왔다. 홍일 외무부 대

    중앙일보

    1978.04.17 00:00

  • 한국 참여·동의 없이|한반도 거론 못한다

    홍일 외무부대변인은 6일 최근 국내외 언론들이 한반도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데 대해 성명을 발표, 『우리정부의 기본정책과 입장은 74년8월15일 발표된 평화통일 3대원칙에 입각하고

    중앙일보

    1978.04.08 00:00

  • 공동성명 존중돼야

    홍일 외무부대변인은 미 의회의 박동선 씨에 대한 소환장 발부와 관련해 논평, 『미 하원윤리위의 활동은 미국내 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며 미국의 국내문제』라고 주장, 『양국정부대표가

    중앙일보

    1978.01.06 00:00

  • 박동선 사건 발표 하루 늦춰

    박동선 문제에 관한 한미 양국 정부간의 협력에 관한 공동 성명에 서명 이를 서울과 「워싱턴」에서 30일 동시 발표키로한 한미 양국정부는 일부 합의내용에 이의가 제기돼 서명 발표를

    중앙일보

    1977.12.30 00:00

  • 「수사」 대신 「대화」로 통일

    30일 밤늦게 박동선 사건 수사 협조에 관한 한미 합의 내용을 발표한 외무부 관계자들은 오랜만에 밝은 표정. 한 관계자는 『타결 과정에서 피차 불편했던 경우가 허다했지만 결과는 탁

    중앙일보

    1977.10.01 00:00

  • "북괴 2백해리 수역 인정 못한다"

    정부는 15일 북한의 2백해리 경제수역 설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공식태도를 밝혔다. 외무부는 성명을 내어 『오는 8월1일부터 시행할 북한의 2백해리 경제수역 설정이 사실이라면 북한

    중앙일보

    1977.07.16 00:00

  • 공동조사 용의

    홍일 외무부대변인은 21일 우리 어선이 중공의 어로 수역과 영해를 계속 침범하고 중공어부들에게 도발적 행위를 하고있다는 6월19일자 북경당국의 성명에 대해 『우리 수산당국은 이미

    중앙일보

    1977.06.21 00:00

  • 비준서 교환 지연될 듯

    【동경=김경철 특파원】한일대륙붕협정은 일본국회에서 중의원을 통과한 후 30일이 경과함으로써 9일 0시를 기점으로 자동성립이 확정됐다. 일본외무성은 이에 따라 한국과의 비준서교환·협

    중앙일보

    1977.06.09 00:00

  • 중공, 한국선 어로방해|지난달 16∼18일에 흑산도 서남 공해서 재발방지 강력 요구|외무부 성명

    홍일 외무부대변인은 4일 『지난달 16일부터 18일 사이 소 흑산도 서남방 70∼90 「마일」지점 공해 상에서 5∼6척의 무장선박의 호위를 받은 중공어선 40여 척이 한국어선들의

    중앙일보

    1977.06.04 00:00

  • "한국 지도층, 철군 환영 안 해

    홍일 외무부 대변인은 27일「카터」대통령이 한국지도자들도 주한미지상군 철수에 찬성했다고 언급한데 대해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논평했다. 홍 대변인은 미지상군 철수는 한국정

    중앙일보

    1977.05.28 00:00

  • 과격파의 편파주장 탈피 못한 것은 유감

    외무부는 11일 비동맹조정위원회 외상회의 폐막에 따른 논평을 발표, 『비동맹회의가 작년 「스리랑카」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북괴의 선동적인 허위선전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비동맹회의 내부

    중앙일보

    1977.04.12 00:00

  • 대변인논평 약간 누그러져

    『우리 입장은 이미 충분히 밝혀진 바 있으므로 특별히 논평할 것이 없으나 굳이 논평한다면…』-. 이 말은 홍일 외무부 대변인이 29일 「브라운」 미국무성 대변인의 명동사건에 대한

    중앙일보

    1977.03.30 00:00

  • 대법원 판결, 법절차 거친 것

    홍일 외무부 대변인은 29일 「프레드릭·브라운」 미국무성 대변인의 명동사건 판결에 대한 논평과 관련, 『소위 3·1명동사건에 관한 우리 대법원의 선고는 정당한 법 절차를 거친 최종

    중앙일보

    1977.03.29 00:00

  • 허둥대는 외무부의 「입」

    외무부의 홍일 대변인은 25일 낮 12시15분 허겁지겁 기자실에 나타나 「프레드릭·브라운」 미국무성 대변인이 24일 대법원의 명동사건 확정판결에 대한 논평을 했다며 「대응」논평을

    중앙일보

    1977.03.26 00:00

  • 「추격외교」란 말의 진의…

    ○…외무부가 27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행한 외교시책보고 중 올해 외교목표로 설정한 「추격외교」가 이채. 뒤쫓아가며 친다는 의미의 「추격」이 어떻게 우리 외교와 연결되느냐는 기자질문

    중앙일보

    1977.01.28 00:00

  • 한·미 우호증진 희망

    홍일 외무부 대변인은 22일 하오 성명을 발표, 「지미·카터」 대통령이 39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카터」 신 정부 아래서도 한·미 양국간의 전통적 우호

    중앙일보

    1977.01.24 00:00

  • 한일 우호 더욱 증진

    홍일 외무부 대변인은 24일 신임 일본 수상 선출에 대해 『우리는 이번 우방 일본의 새로운 내각의 총리 대신으로 「후꾸다·다께오」씨가 선출된 데 대해 축하의 뜻을 표한다』고 말하고

    중앙일보

    1976.12.25 00:00

  • 「밴스」의 국무지명을 환영

    홍일 외무부 대변인은 4일 「사이러스·밴슨」씨의 미 국무장관지명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 『우리는 한미 양국이 상호존경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앞으로도 계속 발전

    중앙일보

    1976.12.04 00:00

  • 한미 양국 우호증진 희망

    외무부의 홍일 대변인은 4일 「지미·카터」후보가 우리의 우방인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된 데 대해 한국 정부와 국민은 축의를 표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앞으로도 미국이 새로운 지도자의

    중앙일보

    1976.11.04 00:00

  • 북괴의 긍정적 반응 희망 외무부 논평

    홍일 외무부 대변인은 1일『「키신저」미 국무장관의 제의는 한국문제해결을 위한 남북 당사자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남북한 및 미 중공의 4자 회담개최에 필요한 절차를 보다 구체화

    중앙일보

    1976.10.01 00:00

  • 북괴철회의도 더 두고봐야

    외무부는 한국문제에 관한 서방·공산양측의 결의안 철회사태에 대해 『북괴의 결의안 철회 의도는 더 두고봐야 알겠다』며 신중자세. 이 때문에 22일 홍일 외무부대변인의 공식논평도 원고

    중앙일보

    1976.09.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