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806)|내가 아는 박헌영(124)-여순사건의 저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지 두달 남짓한 48년10월19일 밤 여수주둔 제14연대가 돌연 반란을 일으켰다. 정말 이것은 돌발사건이었다. 정부측에서도 몰랐고 남로당 측서도 몰랐다. 그해

    중앙일보

    1973.07.26 00:00

  • (445)-전시의 문화인들⑩|음악인의 활동

    음악인들은 9·28 수복 후부터 군과 유대를 맺으며 정훈 업무를 지원했다. 음악인들의 활동은 군가를 작곡하여 보급에 앞장섰고 교향악단 또는 합창단에 소속되어 「유엔」군과 한국군 위

    중앙일보

    1973.04.1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705)|내가 아는 박헌영(제 31화)

    민중 운동자 대회 이른바 사회주의 사상운동이 국내에 널리 전개되자 「코민테른」의 대한국 관계기관인 「꼬르뷰로」(고려국)는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 안에 공산조직을 만들려고 광분했다.

    중앙일보

    1973.03.10 00:00

  • 공화당

    공화당 공천작업은 11일 상오 청와대에서 매듭지어 졌다. 상오 10시30분쯤 정일권 당의장 서리와 길전식 사무총장은 청와대에서 연락을 받고 들어가 박정희 총재에게 당에서 만든 최

    중앙일보

    1973.02.12 00:00

  • (645)서북청년회(5)|문봉제

    소 영사관을 습격한날 밤 만든 것이 바로 평안청의 전신 평남 동지회였다. 좌익의 숨통을 누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힘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오던 터여서 낮의 흥분이

    중앙일보

    1972.12.26 00:00

  • (378)-(2)「6·25」22주기…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1)고지쟁탈전 적의 춘계 공세가「유엔」군에 의해 분쇄되고 주「유엔」소련 대표「야콥·A·말리코」가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할 무렵인 51년6월 중동부 전선의 두솔산 일대서는 우리 해병

    중앙일보

    1972.10.05 00:00

  • 「꼬리」붙은 대표자 확인증

    공화당은 28일 현판식에 이어 29일엔 인주식을 했다. 박정희 총재는 28일 새 당사에 들러 간판을 걸고 길전식 사무총장 등 당 간부 안내로 5층 건물을 둘러보고 『겉보기 보다 내

    중앙일보

    1972.09.29 00:00

  • 세상 알려면 물건 사봐야

    박정희 대통령은 추석날 지만 군을 데리고 선 영이 있는 선산 군 전미읍 상모리에 육로로 내려가 성묘. 이낙선 상고, 박종규 경호실장, 민헌기 주치의만을 대동한 박대통령은 먼저 구미

    중앙일보

    1972.09.23 00:00

  • 두 외교승리에 축제분위기

    「유엔」운영위에서의 한국문제 표결이 우리의 대승으로 판명되자 외무부는 축제분위기. 압승할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21일 아침7시 반에 등청한 윤석환 외무차관은 표결결과를 보고 받고

    중앙일보

    1972.09.21 00:00

  • 여 의원 공포건의…「돈 지원」

    이병희 의원 초청으로 방한중인 일본 중의원의 여야의원 4명은 1일 백두진 국회의장·김종필 총리·여야당 간부들을 방문하고, 저녁엔 정일권 공화당의장이 베푼 만찬회에 참석, 환담했다.

    중앙일보

    1972.09.02 00:00

  • 문화적 통일에 접근하는 길

    ○…박정희대통령은 29일 상오 2·4분기 심사분석 보고회의에 참석하려던 예정을 취소하고 한국적십자사대표단이 판문점을 넘어 이북으로 가는 광경을 이후낙 정보부장, 김정렴 비서실장과

    중앙일보

    1972.08.29 00:00

  • 공화, 당7역 매주 만나기로

    ○…22일 하오 「헬리콥터」편으로 한강주변의 수사상황을 공중 시찰하고 경기도청에 들른 박정희대통령은 마침 구호금품을 갖고 온 신민당의 김형일 김은하 이댁돈 천명기 이세규 오홍석 의

    중앙일보

    1972.08.23 00:00

  • 「심야 충격」에 엇갈린 희비|8·3 경제 긴급명령 발표되던 날의 표정

    하룻밤 사이 경제계는 발칵 뒤집히고 상가는 놀라움에 어리둥절했다. 사채 동결 긴급명령 소식이 전해진 3일 상오 일부 경제계 인사들은 정부의 과감한 결단에 찬의를 표하는가 하면, 중

    중앙일보

    1972.08.03 00:00

  • (337)유격전⑥

    Y부대 유격용사들은 51년11월부터는 모든 작전을 중지하고 월동에 들어갔다. 역단위로 편성됐던 혼성부대들은 월동을 위해 7∼10명씩의 지구대로 분산해 연고지로 들어갔다. 혹한의 추

    중앙일보

    1972.06.14 00:00

  • (328)|「아이크」 집권과 내한 (4)|3일간의 방한 (1)

    1952년11월29일,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D·아이젠하워」 원수는 그가 「디트로이트」시에서의 선거 유세 때 공약한 한국 방문 길에 올랐다. 이보다 앞서 11월5일에 「트루먼」

    중앙일보

    1972.05.19 00:00

  • 여섯 차례 정상 회담-닉슨 방소 일정

    【워싱턴 17일 AFP급전합동】「닉슨」 미국 대통령은 오는 22일부터 30일까지 소련을 공식 방문하는 동안 6일간에 걸쳐 소련 지도자들과 정상 회담을 갖는다고 백악관이 17일 발표

    중앙일보

    1972.05.18 00:00

  • 때아닌 비상벨 중앙청 벌컥

    국가와 대통령을 위한 연례 조찬기도회가 오는 5월1일 국내외인사 6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 이 조찬기도회를 위해 28일 위원장에 정일형 의원(신민), 부위원장에 전 의원

    중앙일보

    1972.03.28 00:00

  • (413) | 경무대 사계 (40)|고재봉

    6월25일은 일요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10시쯤 지나 대통령 경호 책임자인 김장흥 총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북 놈들이 장난을 하는 모양입니다.』 『또 좀

    중앙일보

    1972.03.21 00:00

  • 김 당수 입원에 추측 난비

    개점휴업의 국회지만 외무위만은 초당외교라는 그들의 종래 지론에 묶인 공화당이 출석을 해서 13일 회의가 성립됐다. 그러나 개회벽두부터 공개·비공개 여부로 여야의원들간에 입씨름. 신

    중앙일보

    1972.03.13 00:00

  • (297)휴전회담의 개막(11)

    (1) 「유엔」군 측 대표의 일원인 「아레이·버그」 제독이 근착 「리더즈·다이제스트」지에서 회고한바와 같이 미국은 늦어도 한 달이면 휴전회담은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중앙일보

    1972.03.03 00:00

  • 반론 많았던「장기폐회」

    외무부는 요즘 북경소식을 분석하기 위해 해외공관과의「텔렉스」는 24시간 열어 놓고 있고 각종 외신도 정리하느라 관계 관들이 1주일 째 밤샘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공관의 보고

    중앙일보

    1972.02.25 00:00

  • (383)경무대 사계|윤석오(제자는 필자)

    『각하, 이승만 박사 부인이 왔습니다.』 『무슨 귀찮은 소릴 또 하려고 찾아 온 거야….』 『출타 중이라고 할까요.』 『그럴 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들여보내요. 단 면회시간은 5

    중앙일보

    1972.02.15 00:00

  • (378)-제자는 필자|경무대 사계(5)

    ㉯ 조선「호텔」서부터 돈암장 초기까지 이박사의 생활비와 활동비는 한민당에서 지원했다. 처음에는 매달 7만원씩 부담하다가「인플레」도 있고 해서 15만원까지 올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앙일보

    1972.02.09 00:00

  • 신민, 의원 외유에 정지령

    김종필 총리는 군 부대시찰 나흘째인 8일 한미군단과 6군단을 시찰. 한미 군단에서 「피어스」8군부 사령관으로부터 을지문덕 장군상 목각을 선물 받은 김 총리는 답례로 박광진 교수가

    중앙일보

    1972.01.08 00:00